▲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박경임 작가의 모습
유영수
기자는 마침 선교지를 잠시 떠나 한국에 나와 있는 박경임 작가를 지난 주에 직접 만나, 그녀의 고단했던 삶과 최근 발간된 그녀의 책 <슬픔은 발효 중>에 대해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박경임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 <슬픔은 발효 중>이라는 책 제목의 의미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상처가 나면 곪아 터지는 경우가 많지만, 저의 상처는 부패되어서 악취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발효되는 것은 부패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겪지만 이로운 효소를 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잖아요. 그리고 저는 책을 쓰면 슬픔이라는 말을 꼭 넣고 싶었거든요. 그게 제 시그니처였으니까요."
- 살면서 정말 힘들고 고단할 때는 원망하거나 절망적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을까요?
"제가 열여덟 살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 전에는 사는 게 되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다섯 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사고가 난 열여덟 살까지는요. 그런데 교회를 다니고 신앙을 갖게 되면서 늘 저에게 주셨던 말씀이 "경임아 한 걸음만 더 걸어보지 않겠니? 한 걸음만 더 걸어보지 않겠니?" 그 한 걸음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이 된 것 같아요."
- 작가님은 그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아오셨는데, 어떻게 그 시간들을 잘 버티고 견뎌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회복 탄력성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에요. 일반적으로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외향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저는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픈 마음들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쾌활하고 외향적인 성향이 제 안에 있었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늘 주변에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정말 지극히 아껴주는 친구, 지극히 아껴준 선생님 그러니까 제가 박사 과정까지 공부했는데 전 과정에 다 너무 좋은 선생님들이 다 계셨어요. 그러니까 제 인생에서 저를 빚어간 건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길이 끊겨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할 때마다 그분들이 저의 삶에 징검다리가 되어주셨죠."
- 작가님에게 돌아가신 엄마는 어떤 존재였나요?
"제가 4남매 중에 막내였기 때문에 저는 엄마와 애착관계가 굉장히 긴밀했어요. 그래서 저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아니었을까. 엄마가 떠난 이후의 인생이 너무 고단했지만 어렸을 때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은 덕분에 어디 가서도 꿀리지를 않는 거예요.
제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지고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게 없는데도 제 존재가 비굴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이런 것들이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이 저한테 '니가 엄마 닮았다면 엄마가 아름다운 분이셨을 거다'라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엄마도 살아계셨으면 저처럼 멋있게 살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요."
- 그렇게 작가님한테 사랑을 아주 풍성하게 쏟아부어주신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슬픔과 고통은 더 컸을 거 아니에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퇴행이 왔던 것 같아요. 엄마가 없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장례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그래서 엄마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없다는 건 모든 게 사라지는 것과 같았어요."
- 어릴 때 경임이는 어떤 아이였는지, 그리고 지금 48살의 경임이는 어린 경임이를 어떻게 안아주고 있는지.
"어린 경임이가 울려고 하면 사람들이 울지 말라고 했어요. 너무 울고 싶었는데 울 수 있는 곳이 일기장 외에는 없었던 그런 아이였죠. 그래서 마흔여덟이 된 경임이는 초등학교 때 찍었던 사진 속 어린 경임이를 늘 불러줬어요. '경임아 나는 미래에서 온 경임이야. 니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자랐어. 미래에서 온 내가 너를 안아줄게' 불안에 떨면서 울음을 삼키고 살아가는 그 어린 경임이에게 계속해서 말해줬던 것 같아요.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삶이 너의 미래에 있어'라고 말하며 휘몰아치는 슬픔 속에 있는 경임이를 꼭 안아주며 걸어왔어요. 제 sns 친구가 서평을 올렸는데 그 친구도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울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는 이 책을 1인칭으로 읽었다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