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차례의 교육, 탈핵골목순례, 울산시청 앞 농성과 108배, 촛불집회, 노동자실천단 활동이 만들어 낸 ‘신고리 백지화 울산시민 천인 대토론회’는 울산탈핵운동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용석록
2017년 9월 24일 울산 남구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신고리 백지화 울산시민 천인 대토론회'에는 870여 명의 성인과 어린이 청소년 등 1000여 명의 울산 시민이 모였다. 40분간 진행된 선택 토론은 '핵발전소 주변 서생면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이주, 건강 생존권, 보상문제 등)에 대해 정부의 역할을 물었고,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이후 탈핵 한국을 위한 다음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참가자들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을 위한 생존권 보장과 이주지역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어진 40분 동안의 공동 토론에서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부당성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탈핵 집회를 열어서 울산시민들의 의지를 표출하자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천인 토론회는 2017년 7월 출범한 '신고리5·6호기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가 7월 28일부터 9월 20일까지 총 115회에 이르는 탈핵교육과 릴레이 토론을 한 결과물이었어요. '탈핵골목순례'도 한몫했죠."
2017년 9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발표한다.
실망과 절망감이 한동안 저와 울산공동행동을 지배했어요. 허탈했죠.
주민 뺀 공론화요? 설계가 잘못됐어요
시민참여단 471명에게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왜 중단해야 하는지? 매몰 비용보다 사후 비용이 얼마나 더 드는지?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 지역이 왜 문제인지?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380만 명의 대피는 어떻게 가능한지? 지진에 과연 핵발전소는 안전한지? 울산시민의 입장에서 생존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용 국장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생존권을 위협받는 주민을 배제한 불공정한 설계였다고 주장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건설 재개를 결정할 공론화 시민참여단을 인구 비율로 선정하다 보니, 핵발전소를 한 번도 마주한 적도 없고 전기 생산에 큰 관심도 없었던 수도권 전기소비자가 50%를 차지했어요. 16기 핵발전소에 포위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사는 100만 명을 대변할 인원은 단 7명이었죠.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등 피해 당사자가 될 미래세대의 참여도 제한되었어요. 기계적인 비율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을 통한 공론화는 한참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의 대응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좀 더 부각했어야 했는데 재생에너지 전환 등 피부에 와닿지 않는 교과서적 대안 제시 등으로 논제를 벗어난 것 같아서 답답했다는 용 국장은 결국 471명의 시민참여단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이 가슴 쓰리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탈핵운동'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찬반 공론화가 남긴 과제가 되었다.
10만 년의 책임, 고준위핵폐기물
잘못 설계된 공론화는 대응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공론화는 여론을 반영하는 한 가지 방법론일 뿐인데 사안의 복잡성, 특수성, 지역성을 반영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이 정부가 추진한 공론화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이어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공론화'도 추진했다. 공론화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거부감은 커져만 갔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제1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 시민사회 의견수렴 등이 없었으며 졸속으로 결정되었다는 의견을 수렴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 재검토'를 국정 과제로 삼았다. 이후 산업부는 문 정부의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2018년부터 재검토를 시작했다.
2019년 산업부는 재검토위원회를 중립적 인사 15명 내외로 구성하며, 추천된 위원에 대한 제척권을 환경단체와 핵발전업계·지역주민에게 주겠다고 밝혔어요. 이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방안 재검토 준비단'에 참여했던 핵발전소 소재지역과 환경단체 등을 공론화위원회 위원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였죠. 또다시 지역주민은 공론화 논의에서 밀려났어요.
울산공동행동 등 15개 연대단체인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는 2019년 4월 성명을 통해 "재검토위원회에 이해당사자들이 일부 참여하는 방식을 수차례 제안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정부의 일방적인 공론화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쪽짜리 재검토위원회가 된 셈이다.
월성핵발전소는 중수로형으로 핵폐기물 배출량이 많아 1992년부터 핵발전소 건물 바깥 부지에 '캐니스터'라는 건식저장시설(공냉식)을 별도로 300기 건설했고, 2006년부터 대용량 조밀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 7기를 건설해 2010년부터 운영했어요. 그런데 이마저도 포화상태가 되자 맥스터 증설 계획을 세웠어요. 산업부는 이 또한 공론화로 돌파하려 했고, 지역주민 참여와 조작 논란 등의 문제가 발생해요. 특히 울산에서는 공론화 시민참여단에 울산시민을 배제한 문제로 인해 반발이 거셌지요.
울산 북구는 월성핵발전소로부터 7km 거리에 인접해 경주 시내보다 훨씬 가깝다. 월성핵발전소 맥스터 공론화 시민참여단을 경주시민 145명으로 꾸린다는 결정에 울산북구 주민들은 반발했다. 울산시장, 울산북구청장, 울산시의회 등도 울산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계속 정부와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에 전달했지만 무시되었다.
울산 북구 주민들은 6월 5~6일 월성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맥스터 증설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총 유권자의 28.82%인 50,479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47,829명(94.8%)가 월성 임시저장 시설인 맥스터 증설에 반대표를 던져 월성핵발전소 맥스터 추가건설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임시 저장시설을 언제까지 운영할 것인지? 영구처분장은 언제쯤 건설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나 대안도 없이 밀어붙인 또 다른 공론화는 민의를 상실한 채 군사독재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