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사건' 피해자 김진주(필명)씨가 지난 6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피해자를구하자'에 올라온 영상 '안녕하세요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입니다' 일부
피해자를구하자
-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재판을 거치면서 다른 범죄 피해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가 겪은 일이 모든 범죄 피해자에게 만연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건이 터지고 피해가 발생해야 정부가 예방책을 찾기 시작한다든지, 사법 체계의 불편함이라든지. 그런데 피해자들은 대부분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위치에 놓여 있잖아요. 기적적으로 회복한 저는 거기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책도 그런 이유에서 쓰게 된 거고요."
-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범죄 피해의 실질적 당사자인데도 형사재판 수사 기록과 증거 열람을 거절당했어요. 손쉽게 자료를 받아본 피해자를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수사기관과 법원 어디에도 피해자의 진술권과 알 권리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범죄 피해가 발생하고 1년 동안 어떤 피해자 지원센터와도 연계되지 못했어요. 범죄 피해자 구조금을 받으려고 해도 복잡한 신청 절차랑 서류 발급을 거쳐 직접 피해 사실을 소명해야 했고요."
- 직접 나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겠어요.
"범죄 피해자들은 타인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경험을 사법 체계에 직접 증명해야 해요. 피해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이해도가 정말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죠."
-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제 범죄 피해 경험과 다른 피해자분들의 이야기, 그리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형사사법 절차의 문제점을 적었어요. 다른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예방주사 같은 책이기도 해요. 피해자가 공론화를 원한다고 해도 막상 타인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요. 바로 언론에 알려져도 피해가 구제되는 것 또한 아니고요. 그런 공론화의 어려움 역시 피해자분들이 미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 범죄 피해를 겪은 뒤 어땠어요?
"모르는 남성에게 맞은 것도 그렇고, 뇌신경을 다쳐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도 그렇고, 주변에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무차별 범죄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게 힘들고 난해했던 것 같아요."
- 다리 마비는 어떤 상태였나요?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지다가 지난해 6월 7일 정말 갑자기 마비가 풀렸어요. 다리를 다 움직인 건 아니고 발가락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영구적인 장애를 얻을 거란 소견서로 기존의 '상해'가 '중상해'로 바뀐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주치의 선생님도 '이건 기적이다'라면서 감탄하셨어요."
- 필명은 왜 진주라고 붙이신 거예요?
"마비가 풀린 6월의 탄생석을 찾아봤는데 진주더라고요. 조개 체내의 이물질을 막기 위한 무기질 덩어리라니, 재판을 거치며 피해 경험을 공론화한 제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김진주'라는 이름을 계속 쓸 거예요."
- 처음 법정에 들어갈 땐 어땠나요?
"거침없고 후회 없었어요. 법정 안에 제 편이 없다는 느낌이 드니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저는 재판의 당사자이고 잘못한 게 없으니 망설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 가해자에게 20년형이 확정된 이후는 어땠나요?
"마냥 홀가분하지는 않았어요. (1심 12년형에서) 딱 늘어난 형량만큼 생명을 연장받은 느낌이었어요. 형을 확정받은 가해자가 구치소에서 노골적으로 보복을 예고했잖아요. 지금도 불안하고 두려워요. 무엇보다 피해자가 겨우 애써야 문제를 알릴 수 있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어요."
피해자가 피해자를 돕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