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장군의금부가 있던 자리 맞은 편 종로1가 사거리에 있는 전봉준 장군 동상.
이영천
그가 두 발로 누볐을 땅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당장이라도 길을 나서, 망해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는 게 없었다. 뭐라도 채워야 했다. 책장을 뒤진다.
다행히 동학을 그린 소설과 연구서, 학술서 수십 권이 손에 잡힌다. 차분하게 읽으며 기록한다. 책들은 내 의식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파랑새를 불러내 주었다. 처절한 패배였을망정, 전봉준 그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당위를 말하고 있었다. 맞다. 파랑새는 항시 날아올라야 하고, 녹두꽃은 언제건 다시 피어나야 한다.
그중 유독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주요 간부로 동학농민혁명(아래 동학혁명)에 참여한 오지영(吳知泳)이 지은 <동학사>다. 한문투성이에 세로쓰기다. 단숨에 읽어낸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다. 이 책을 들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녹두꽃을 찾아보는 여정을 떠나려 한다. 위정척사파로 강제 병합을 통탄하며 1910년 자결한 황현(黃玹)의 <오하기문>도 좋은 동반자라 할 만하다.
증오와 사랑
녹두장군 그는 누구인가? 혁명가인가, 반란군 수괴인가, 그도 아니면 폭압에 항거한 평범한 일개 서생에 불과했던가? 그가 누구건, 하나의 이미지만은 또렷하다. 시인 김남주가 읊은, 썩은 권력에 대한 증오와 민중에 대한 사랑이라는 '형형한 두 개의 눈'이다. 이것이어야만 그에 대한 모든 설명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서만 험난한 혁명전쟁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