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김유진, 2022, '디지털화로 확장되는 헬스케어 생태계' 보고서, 하나금융경영연구소
http://www.hanaif.re.kr/boardDetail.do?hmpeSeqNo=35224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잠시 대안에 대한 모색을 내려놓고, 문제의 본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집단 간 갈등으로 비친 것은 눈앞에 벌어진 현상만 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는 '진료예약 앱의 상용화와 그에 따른 취약집단의 의료 접근성과 형평성 저하'라는 문제 정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용화 현상을 추동한 정치경제적 맥락과 구조를 고려하면 유불리의 대립선과 당사자성이 전혀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진료예약 앱 서비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과 산업의 발전, 그리고 보건의료의 디지털화라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출현한 것이다. 똑닥의 성공은 이러한 변화를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보건의료 분야의 디지털 '플랫폼화(platformisation)'를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는 디지털 치료제를 비롯해 여러 산업이 존재한다. 이 중 플랫폼화와 관련해 눈에 띄는 산업으로 비대면 진료 중개 산업과 건강관리 서비스 산업 등이 있다. 여기에 현재 IT 통신, 의료기기, 제약, 보험, 금융, 빅테크 기업 등이 뛰어들어 와 있는 상황이다. 이들 업계의 공통된 최종 목표는 자신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관련 자료: 하나금융연구소,
디지털화로 확장되는 헬스케어 생태계).
똑닥만 보더라도 최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종료하긴 했지만, 진료예약·접수 외에도 진료비 결제와 실손보험 청구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로서는 진료 중개 수수료만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동기가 강하다. (관련 기사: <메디컬타임즈>,
비대면 진료 플랫폼 킬러 콘텐츠가 핵심)
이는 비대면 진료 중개와 약 배송뿐만 아니라, "병원예약, 건강검진, 개인건강기록, 영양제, 맞춤형 건강보험 등 모든 의료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B2C 의료 슈퍼앱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힌 관련 업계 1위 기업의 대표의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관련 기사: <메디게이트 뉴스>,
"슈퍼앱 도전하는 닥터나우...비대면진료 침투율 0.2%→17%, 시장 규모 10조원 예상").
가급적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려는 '가치사슬(Value chain)' 확장 노력은 플랫폼 앱 산업의 기본 생리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규제 방침으로 팬데믹 특수를 누렸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가 침체에 빠진 것처럼, 규제와 시장수요 부족 등으로 인해 플랫폼화의 진행 속도는 더딘 편이다. 그런 와중에 똑닥이 진료예약 시장을 선점한 덕분에 안정적인 상용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똑닥의 상용화는 일상의 디지털화가 보건의료 영역에 침투한 드문 사례라는 점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플랫폼 산업의 활로를 뚫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정부의 추가적인 규제가 있지 않는 한, 지금의 미비한 일차의료체계 속에서 똑닥 앱 사용자 수는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앱 사용자 수의 증가는 단지 수입 증대의 효과만 거두는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앱을 매개로 의료이용을 하는 생활양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는 게 더 큰 잠재력이다. 사실 이것이 똑닥의 상용화 현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 대목이다. 본인이 자주 사용하고 신뢰하는 앱이라면 진료 예약과 결제, 보험청구에 더해 원격 건강검진이나 건강기능식품 구매 등의 기타 서비스에 대한 수용성도 높아질 수 있다. 주식투자 전문가의 산업 전망 분석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똑닥의 운영사 비브로스는 기업 가치를 높이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가운데 경쟁에서 밀린 플랫폼 업체들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앱의 몸집을 키워갈지도 모른다. 또는 올 초 아마존이 진료 전문 플랫폼 기업 '원 메디컬'을 인수했듯이, 네이버나 카카오 등의 빅테크 기업들에 합병될 수도 있다. 누가 먹고 먹히든 간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토탈 헬스케어 플랫폼'의 출현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종 목표를 향해 단계를 밟아가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데 중간 단계의 내용과 결과만 떼어 놓고 평가하는 것은 불완전한 이해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 진료예약 문제도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여기에 논의가 매몰되다 보면 보건의료의 디지털 플랫폼화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의료 영리화, 정부는 막을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