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판매중인 도서와 소품들
박준영
네 서점을 다니며 이곳 말고 홍콩 혁명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물었다. 과거에는 온라인에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거나 후원하는 '노란 가게 지도(Yellow-Blue Map)'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함께 의지하며 운영하던 다른 저항 서점들도 하나 둘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홍콩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식당과 카페 몇 곳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던 한 서점 주인은 번역기와 몸짓을 섞어 영업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홍콩 민주화운동과 현재 홍콩의 민주주의 상황을 전하는 독립 언론을 소개해줬다. 한 서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우문현답이 있었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것 같아요. 이제 가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네요."
"당신은 늦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 있고, 나를 만날 수 있잖아요."
서점을 나서며 서점 주인들에게 같은 인사를 건냈다. 이 의례적인 인사에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같았고 이 역시 간절했다.
"항상 안전하고, 건강하세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
"꼭 다시 만나요."
지난 10일에는 홍콩 구의원 선거가 있었다. 2019년 구의원 선거에서는 역대 가장 높은 71.2%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민주당 등 범민주 진영이 전체 선출직 452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이후 '홍콩의 중국화' 과정에서 구의회 직접 선출직이 대폭 줄었고 이마저도 '애국'을 검증하는 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후보만 입후보할 수 있게 되었다. 홍콩 시민들은 '투표 거부'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번 홍콩 구의원 선거는 27.5%의 역대 최저 투표율을 보이며 초라하게 치러졌다. 홍콩 민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이를 가로막는 제도의 높은 장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선거였다.
홍콩의 스카이라인과 야경은 여전히 눈부셨지만 높은 빌딩이 만들어내는 깊은 골목 사이를 걸으며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고개만 돌리면 나타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명품 상점들과 좁은 식당에서 빠른 회전으로 식사하는 사람들은 여전했는데도 말이다.
밀려드는 천민 자본주의와 훼손되는 민주주의에 당신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냐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스치는 눈빛들로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낯선 지도를 보며 힘겹게 찾아간 저항 서점에서는 여전히 홍콩 민주주의의 작은 불씨를 경험할 수 있다. 작은 불씨는 선명했다. 이 불씨가 다시 이어붙어 활활 타오르게 될 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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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온 것 같아요" 홍콩 저항 서점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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