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원에 핀 꽃
김은상
꽃은 보이는 음악입니다. 이스라지나 이베리스를 보면 이은미의 '어떤 그리움' 같은 발라드가 들려옵니다. 겉보기엔 화사하지만 이별의 슬픔처럼 유심히 보아야 알아챌 수 있는 아련함이 있죠. 라일락과 수선화는 팝 음악이 어울려요.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친근함과 경쾌함이 있습니다. 철쭉, 영산홍, 황매화의 펑펑 터지는 꽃송이는 흥겨운 로큰롤이고요. 구불구불한 꽃송이에 자유분방함과 비범함을 갖춘 히야신스는 재즈에 가깝습니다. 자두꽃, 사과꽃, 모과꽃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존 덴버의 포크송 'Today'가 떠오릅니다.
커다란 꽃잎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 뚝뚝 떨어지는 목련에서는 블루지한 음악이 연상됩니다. 묵직한 느낌의 꽃송이를 가진 동백의 짙은 빨강은 헤비메탈로 다가오고, 작약은 몇 송이 만으로도 화단을 풍성하게 만드는 현악 4중주, 꽃잔디는 무더기로 피어나 관현악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반면 옥잠화, 은방울꽃처럼 찬란한 흰색을 가진 꽃들에게선 피아노 독주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뜬금없겠지만 할미꽃과 매발톱꽃의 구부정하게 수그린 모습에서 다이내믹한 래퍼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음악에는 인생의 어느 한순간을 붙잡아 잠시 머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억일 수도 있고 가던 걸음이기도 합니다. 한 송이로도 아름답지만 줄지어 섰거나 군락을 이루었을 때 더욱 빛나는 정원의 꽃은, 하나의 음에서 멜로디가 되었다가 곡을 이룰 때 조화롭게 완성되는 음악과 닮아있습니다. 사람의 손을 타는 것까지도 말이죠.
때론 흥겨운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드럽고 편안한 곡들이 끌립니다. 삶의 속도가 늦춰져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고 하니 비슷한 이치겠죠? 예전엔 꽃을 보기 위해 멀리 떠나기도 했지만 함께 살지는 않았습니다. 가까이 있기도 했지만 정작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꽃을 가까이 두고, 가꾸고, 자세히 보고, 사랑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날마다 꽃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오랜 친구로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여기 시골의 뜨락에서 듣는 음악에 꽃의 기억이 새겨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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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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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음악이 되고, 음악이 꽃이 되는 시골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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