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에 핀 눈꽃과 벽난로의 불꽃
김은상
사람만 추위에 약한 것이 아닙니다. 야외 급수 설비, 즉 부동급수전(不凍給水栓)은 얼지 않는 마당의 수도꼭지인데, 말이 그렇지 지하수 또한 강추위에 얼 수 있으니 보온재로 감싸줍니다. 마대로 감아준 홍가시나무와 금목서도 뿌리가 얼지 않도록 주변에 왕겨를 듬뿍 얹어줍니다. 수국과 무화과도 같은 이불을 덮어주고요. 우선 살아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움을 틔우려면 거름이 필요합니다. 일 년 내내 썩힌 퇴비를 유실수 주위에 뿌려주고 마른풀과 낙엽으로 덮어줍니다. 거름은 양분을 가져가는 뿌리 끝(나무의 가지 끝과 거의 일치한다고 하네요) 주변에 주는데, 햇빛 다툼을 하는 지상의 모습과는 달리 땅속에선 미생물을 통해 평화롭게 양분을 나눠 먹는다고 합니다.
겨울엔 하얀 눈이 꽃입니다. 초록의 침엽수에 소복이 핀 꽃은 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다른 의미의 탄생이죠. '겨울이 되어야 솔 푸른 줄 안다'던가요? 다른 계절엔 무심히 보아 넘기던 상록수들의 생기가 빛나는 때입니다. 눈꽃 속에 피어난 동백은 그 절정이죠. 다산의 상징으로 여긴 것이 꼭 많은 열매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태아였습니다. 탄생을 준비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그런 계절이 아닌가 싶네요. 세 개의 계절을 위한 잉태의 시간이죠. 지난해 많은 꽃을 보았고 그들이 떨군 무수한 씨앗이 있으니 봄을 기대하게 됩니다. 과연 그들과 똑닮은 자손들로 이어질까요?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던 때 말이죠. 꿈을 깨게 하는 각성제가 현실이라면 반대로 혹독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 미소 짓게 하는 기다림으로 힘든 계절을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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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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