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제조업, 생산직 등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주 최대 60시간 이내' 한도로 완화하는 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3일 서울 마포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인 정보 게시판에 주 52시간을 기본으로 한 근로 시간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사실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무엇보다도 오랜 노동은 건강을 해칩니다. 장시간 노동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에서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심야 노동은 인간의 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노동하다 피로로 죽는 산업재해를 우리는 과로사라고 부르지요. 이 '과로사'라는 말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죽도록 일하는' 게 미덕인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비극적 풍경입니다. 이 비극을 멈추기 위한 최소 조건이 바로, 노동시간 단축입니다.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 등 일자리 문제의 대안도 됩니다. 아직도 다수 정치세력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을 주되게 제안합니다만,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기가 다시 도래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향후 저출생에 따른 (노동)인구 구성의 변화, 그리고 장기적 저성장을 점치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또는 나누기)은 실업 문제의 현실적 해결책입니다.
이외에도 노동시간 단축은 기후 위기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도 제시됩니다. 더 많이 일하는 사회는 더 많이 생산하는 사회이고, 더 많이 생산하는 사회는 (자원을 포함해) 더 많이 소비(소모)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쉼 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사회일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지구에 미치는 부정적이고 연쇄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극단적 불평등과 노동 빈곤이 문제라지만, 어쨌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삽니다. 이 풍요한 시대에 우린,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버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본가들의 탐욕과 착취의 문제를 제쳐두고 노동자가 먼저 양보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성장에 관한 우리의 욕망을 잔잔히 성찰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이 소비하려는 욕망의 수레에선 내려와야겠지만, 그렇다고 끊임없이 더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기이한 체제를 그냥 둘 순 없는 노릇입니다.
집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 자산이 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집을 사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질 것이고, 또 이 부채를 갚기 위해 더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이나 돌봄이 상품이 되는 사회에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혹은 부모를 부양하려면 더 구매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노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인간적 존엄조차 유지할 수 없는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몸을 움직여 제 노동력을 팔아 먹고사는데도 법과 제도론 포괄되지 않아 최저임금도,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들은 더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세진씨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50여 년 전, 한 달에 단 이틀만 쉬며 하루 14시간씩 노동했던 전태일과 다른 처지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심야 노동에서 벗어난 A는 육신의 피로함은 풀린 듯했지만, 쪼들리는 살림에 영혼은 고단해 보였습니다. 기회만 있다면 현재의 생존과 안락한 미래를 위해 언제라도 제 몸과 시간을 갈아 넣을 요량인 듯했습니다. 우리 사회 많은 노동자가 A나 세진씨처럼 장시간 노동을 합니다. 강제노동이 사라진 시대이지만, 이를 과연 온전한 의미의 자발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육신의 피로함과 영혼의 고단 사이에 선택을 강요하는 이 체제를 바꿀 사회적 노력이 절실합니다. 진지한 집단적 숙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120시간을 바짝 일하는' 사회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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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학원비 생각하면 더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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