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 정환흠·정미순 씨 부부. 탑차에 꿈을 싣고 오늘도 내일로 달린다.
임학현 포토 디렉터
"우리는 세상에서 내쳐져 외롭게 서 있다. 앞에 보이는 건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린 짧은 철로뿐이다." - <더 로드: 길 위의 삶, 호보 이야기> 중에서.
<더 로드>의 저자 잭 런던(Jack London)은 호보(Hobo), 떠돌이 노동자였다. 열여덟 나이에 화물열차에 몸을 싣고 고향 캘리포니아를 떠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정해진 길은 없었다. 금 채굴꾼이자 원양어선을 타는 뱃사람, 종군기자로도 살아갔다. 대공황 시대, 법과 사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은 고단하고 때로 가혹했다.
이동 노동자들은 현대판 호보들이다. 거리가 곧 그들의 일터다. 배달원, 대리운전 기사, 요양보호사, 방문 판매원, 장비와 설비 설치 및 수리 기사, 수도·가스 검침원 등 수많은 사람이 묵묵히 뒤에서 우리 일상을 움직인다.
2022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 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의 수는 56만 명에 이른다. 이동 노동자 대부분이 특수고용 노동자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 관련 법의 보호 밖에 있다.
종일 움직여야 하는 고단한 몸을 잠시나마 누일 곳도 없다.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부가 이동 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데 따르면, 업무 중 대기 장소로 도로변이 51.5%로 가장 많고 편의점과 음식점, 공원, 공터 등이 뒤를 이었다. 추워도 더워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길에서 일하고 먹고 쉬며 온종일 머문다. 갈 곳이 없다.
지난 6월,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부가 부평구 십정동에 문을 연 엠마오(Emmaus)는 이동 노동자들을 위한 안식처다. 인천시도 고마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동 노동자 쉼터 조성을 위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달 남동구 구월동에 첫 '생활물류 쉼터'를 열고, 내년부터 2028년까지 매년 두 곳씩 모두 열 곳의 이동 노동자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