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 발표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주 69시간' 카드가 아쉬운 모양이다. 지난 3월 정공법을 택했다가 된통 두들겨 맞고 추진을 접는 듯하더니, 여론조사 결과라는 새로운 패를 들고 8개월 만에 슬그머니 다시 나타났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기존보다 더 넓게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았다면서 '일부 업종·직종'에서 협의를 거쳐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론조사에 근거한다니, 대번에 질문이 나온다.
10명 중 8명이 반대하는 재활용품 규제 철회는?
반대가 60%를 넘나들었던 용산 대통령실 이전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론조사를 앞에 내세우는 방식이 정권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선택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 어떻게든 '69시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도드라진다.
'바짝 일한 다음 놀면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의 근원
'악마의 맷돌'.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에 대한 예상 이상의 극심한 반발과, 정부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노동시간 제한을 풀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며 떠올린 개념이다.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그의 역작 <거대한 전환>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동학을 논하며 '이중운동'을 이야기했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자기조정시장'이 인간과 사회의 기본적 삶의 토대를 해체하고 잠식해 갈 때 두 방향의 운동이 벌어진다. 즉, 시장이 '악마의 맷돌'이 되어 시장 이윤 획득을 위한 자본의 증식 과정 속에서 인간과 자연을 '갈아 버리려' 하면, 이런 폭거에 대항해 사회는 '자기보호'를 위한 운동을 주기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것이 '이중운동'이다.
'주 69시간'의 연원이 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발언'은 '악마의 맷돌'을 문자 그대로 표현한다. 게임이라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순간에는 인간의 노동시간을 무자비하게, 주 120시간을 투입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바짝 일한 다음에 놀면 되는 거 아니냐.
상품의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나 사회적 수인한도를 뛰어넘어서라도 투입할 수 있어야 인류의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그리고 이것이 자본가 - 노동자 양자 간의 자유계약에 의해 보증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것'이라는 아이디어다.
40년 전 마거릿 대처가 "사회 같은 것은 없다"라고 단언했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주 120시간'과 '부정식품을 선택할 자유'를 주창하며 '악마의 맷돌'을 더 빠르게 회전시켜 보려 했다. 그러나 맷돌의 회전 속도에 비례해 다른 한 켠의 길항하는 운동의 정당성도 강화된다는 사실은 간과한 듯하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