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이자 서예가로 명성이 높았던 퇴산 심장환에 대한 해설(사진 왼쪽), 그의 아들로 "역대시조전서" 편찬자로서 학술원 저술상을 받은 영남대 명예교수 모산 심재완(가운데 사진, 그가 붓글씨를 쓰는 모습), 심재완에 대한 해설(오른쪽 사진)
모산학술재단
만약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청구영언>(김천택, 1728년), <해동가요>(김수장, 1762년), <가곡원류(박효관·안민영, 1876년)가 언급될 때 <역대 시조 전서>를 함께 배웠다면 그는 1975년 대학에 입학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심재완(1918~2011)의 <역대 시조 전서>는 1972년에 처음 출간돼 그 이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대 시조집으로 일컬어지는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어깨를 겨룬다는 점만 보아도 <역대 시조 전서>는 대단한 저술이다. 하지만 어떤 국민들에게는 <역대 시조 전서>가 생소할 수도 있다. <역대 시조 전서>가 어떤 책인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들어본다.
"종전까지 있어온 시조집들이 작가 내용 곡목(曲目) 등에 따라 작품을 열거함에 따라, 한 작품이 가집마다 통일되지 못하고 각양의 유사한 노래로 변이되어 그 원작의 추정이 곤란한 것을 문헌의 대교(對校)를 통하여 작품 연구에 앞선 기초 작업을 행했다.
1972년 세종문화사에서 초간하였고, (중략) 3335수를 그 첫글자의 ㄱ, ㄴ, ㄷ, ㄹ 순에 따라 배열하고, 그 아래 이본·곡목·출전을 기록하였다. 작품 연구에 필요한 이본의 대교를 보여주며, 이때까지 정리된 시조집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서예가 심재완'은 아직도 덜 알려졌다
<역대 시조 전서>를 기억하는 국민들도 모산 심재완 박사가 출중한 서예가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평생을 영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한 심 박사가, 계명대 서예과가 창설되었을 때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한 이력은 그의 서예가로서의 위상을 말해준다.
책에 따르면 모산 심 박사가 서예의 길로 들어선 것은 "한학자요 서예가인 부친 슬하에서 글씨에 대한 교양을 받으며 안진경, 하소기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 시초이고, 그 이후 "성제 김태석 선생을 사사하게 되어 안노공제의 진수를 듣고 법첩 보는 안목을 길렀다"고 한다(심재완, '나와 서도',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