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배추 속을 넣는다
윤용정
올해는 아이들의 학원이 걸렸다. 고2인 첫째는 토요일에 수학, 일요일에는 영어 학원을 가야 하고 중3인 둘째는 토요일에 영어 학원을 간다. 학원을 일주일 내내 가는 거라면 하루쯤 빠지라고 하는 게 어렵지 않겠지만, 과목별로 일주일에 한두 번인데 그걸 빠진다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막내만 데리고 가자."
나는 김장 때문에 아이들이 학원을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럴 때 가족들끼리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학원 그냥 빠지라 그래."
남편은 가족의 행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반박한다.
"아니,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나중에 언제? 이럴 때도 안 가면 나중에는 가겠어?"
나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나려고 했다. 남편은 집에선 늘 '학생한테 가장 중요한 게 공부'라고 강조하면서도 지금은 김장을 하러 가야 하니 학원을 빠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나는 최대한 화를 참아가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학원을 빠지다 보면 애들이 다른 날도 빠지고 싶지 않겠어? 이번에만 애들 빼고 하는 걸로 해. 내년에는 미리 조정해 놓을게. 어머니한테 뭐 사갈 거 없는지 전화나 해 봐."
남편이 별말 없이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곧 출발할 건데 뭐 사갈 거 없어? 애들은 학원 때문에 못 갈 거 같아."
"아니, 뭐 이런 날 하루쯤 빠져도 되지 않냐? 같이 고기도 먹고 그러게, (애들도) 데려와."
남편은 어머니께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 내가 전화를 할 걸 그랬나 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걸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방법을 궁리했다. 가족들 모두가 마음 상하지 않을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첫째아이에게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 학원을 빠져도 괜찮은지 물었다. 토요일 수업은 동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어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 토요일은 첫째를 데리고 가고 일요일은 둘째를 데리고 가자. 거기서 안 자고 왔다 갔다 하면 되잖아."
토요일 오전, 학원을 가야하는 둘째를 집에 놔두고 첫째와 막내를 데리고 시댁을 갔다. 점심을 먹고 바로 배추를 씻었다. 절여진 배추는 모두 70 포기, 마당에 큰 대야 여러 개를 놓고 지하수를 받아 씻었다. 물이 매우 차가워서 손이 시리고 쪼그려 앉아 있으면 다리도 아팠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둘째가 빠져서 그런지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