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중인 존 그린버그존 그린버그 <폴리티팩트> 선임 특파원(Senior Correpondent)이 한국에서 온 기자들을 상대로 팩트체크의 원칙과 방법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폴리티팩트>의 트레이닝 세션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SNU팩트체크센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팩트체크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일환이었으며, 존 그린버그 기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이 동참했다.
곽우신
<폴리티팩트>는 '비정파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공정이나 불편부당성처럼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말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기자들이 사실을 검증할 때는 개인의 정파적 이해관계(Partisan Interests)를 최대한 배제해야 하고, 그렇게 찾아낸 팩트를 인정하고 겸손해야 한다. 팩트체커들이 우선해야 할 건 오직 사실 그 자체뿐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적으로 똑같은 횟수를 맞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균형은 필요하지만, 팩트체크의 기준은 숫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폴리티팩트>는 공화당과 관련해 75번 팩트체크에 나섰다. 같은 기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해서는 35번 검증에 나섰다. 이 횟수가 다른 건 <폴리티팩트>가 민주당에 편향적인 매체라거나 진보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대신 누가 더 시민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발언을 하는지, 누가 더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가 기준이 된다.
물론,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 역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이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에 유리한지 혹은 불리한지를 따진다. <폴리티팩트>는 이러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존은 "우리가 팩트로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라며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허위·조작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팩트체크를 해도 계속해서 거짓말을 반복하는 정치인이 있다. 사실을 알리려고 해도, 허위·조작정보가 더 빠른 속도로 더 넓게 퍼지고는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양극단에서 강하게 소리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합리적인 다수의 시민들이 있다. "다수의 독자는 여전히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어한다"라는 민주 시민에 대한 믿음이 바로 <폴리티팩트>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낙담하지도 않는 이유였다.
무엇보다 그는 <폴리티팩트>의 팩트체크가 사람들의 정치적인 견해나 생각을 바꾸기 위한 게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폴리티팩트>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려줄 뿐이다. 그 사실을 해석하고 토론하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만들어나가는 건 시민의 몫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사실관계를 제시하는 것에 끝나서도 안 된다. 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에 장벽을 세웠던 사례를 들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장벽을 세운 뒤 텍사스 주의 국경 도시인 엘파소의 범죄율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장벽을 세운 시점과 이후 엘파소의 범죄율 추이를 보았을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팩트체크는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엘파소의 범죄율은 장벽이 건설되기 이전부터 이미 떨어지고 있었다. 장벽이 범죄율 하락의 원인이 됐다고 단정짓기 어려운 셈이다. 정치인들은 대개 이처럼 약간의 사실을 왜곡해서 교묘하게 이야기한다. 정치인들의 주장에 기자들이 민감하게 촉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설사 정파적 편향성을 강하게 띠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본래 지지해야 하는 게 개별 정당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와 덕목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존은 이야기했다. 예컨대, 불리한 팩트체크에 반발하는 민주당원에게 '진보'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 깨우쳐주자는 제안이었다.
"팩트체크는 외줄 위 자전거 타기...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팩트체크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이후 SNU팩트체크센터와 이를 후원하는 포털을 향한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졌다. 결국 네이버가 SNU팩트체크센터의 재정적 지원을 중단했고(관련 기사:
네이버, SNU팩트체크 서비스 중단... 여당 '외압' 논란), 이에 대해 IFCN을 포함한 여러 단체와 팩트체커들도 비판적인 입장을 표했다(관련 기사:
"팩트체크는 민간 몫... 정부 나서면 객관성·공정성 의심받아").
세계 최대의 팩트체크 컨퍼런스 행사인 '글로벌 팩트10'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존은 SNU팩트체크센터가 그간 쌓아온 성과를 높이 평가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부에게도 허위·조작정보에 대처해야 할 나름의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재단하는 데 대해서도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갈 기자들에게 여러 가지 당부와 조언도 잊지 않았다. 존은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다르고, 미국 사회가 반드시 한국 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서로 처한 조건이 다른 만큼, 긴 호흡으로 시간을 갖고 기사를 쓰는 <폴리티팩트>의 방식을 한국의 일간 매체들이 그대로 따라할 수 없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간 기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함께 작은 프로젝트라도 시작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각자의 안부를 묻는 것부터, 독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할 방법을 찾는 것까지. 또한 팩트체크 기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기사를 쓸 때라도, 팩트체크에 대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팩트체크 기사를 쓰는 것을 외줄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에 비유했다. 어쩌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일지 모른다.
"외줄 위에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이 멈춘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기가 매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줄 위에서 버티기 훨씬 쉽겠죠. 여러분들 각자의 관점을 갖고, 여러분의 흐름대로 질문을 던지세요. 같은 정보를 반복하지 말고, 새로운 정보를 계속 제공하면서 독자들의 물음에 답하세요. 여러분들이 그 이야기를 계속 앞으로 끌고 나간다면, 독자들도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