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에 살고 있는 대칭이란 조개다. 큰 것은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크다. 이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금호강 수생태계가 거의 부활했다는 것이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실 필자는 이런 반응을 그동안 많이 봐왔다. 금호강이 코앞에 있어도 사람들은 금호강을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강에 들어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 어떤 생명이 사는지 잘 모르는 것이다.
고도 산업화에 따른 부작용인데, 그동안 금호강은 죽은 강이었다. 그러면서 그 속에 살던 수많은 생명도 죽어갔다. 동시에 사람들은 강과 멀어졌다. 강 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배경을 나는 현장에서 금호강의 슬픈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금호강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금호강 르네상스'
금호강은 산업화의 아픔을 '심하게' 겪은 곳이다. 섬유산업의 본고장 대구답게 금호강을 따라 우후죽순 들어선 섬유공장들에 설상가상으로 포항제철에 공업용수를 댄다는 명분으로 1980년 금호강 상류에 영천댐이 들어서면서 강물마저 끊어졌다. 섬유공장들에선 오폐수가 그대로 금호강으로 유입됐고, 영천댐의 영향으로 강물이 줄어들자 강은 순식간에 썩었다.
그로 인해 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져갔다. 물고기가 떼로 죽고 조개를 비롯한 강바닥 생명들은 자취를 감췄다.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 강'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강이 됐고, 사람들은 외면했다.
그런 금호강이 되살아났다. 1991년 식수원 낙동강서 터진 폐놀사태가 계기였다. 우리 사회는 식수원이기도 한 강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댐에서 다시 강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했고, 때마침 섬유산업이 쇠락해 공장들이 사라지자 강은 조금씩 조금씩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