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이용객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생경제는 무모한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대란 사태로 번지는 비상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부의 물가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공공이 주도하는 물가상승이 점차 그 강도와 범위를 높이고 넓혀갈 수밖에 없다. 이념과도 같은 '공공요금 민영화' 정책이 민생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짚어보기로 하자.
첫 번째 문제는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보편 인상-선별 지원' 충격이 중산층과 서민을 집중 타격한다는 것이다. 시장 논리에 맡기는 공공요금 인상 정책은 이미 시장실패 영역에 진입한 상태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적자가 해소될 때까지 인상 기조를 유지한다는 시장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은 한, 누적된 물가 충격이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무리한 요금 인상으로 전국민에게 물가 부담을 100% 전가한 후 원성이 높아지면 일부 취약계층을 구제하는 방식은 정상경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특히, 유례없는 4高(고금리/고물가/고환율/고유가) 국면에서 이루어지는 가격전가 정책은 민생경제를 죽이는 자해행위와 마찬가지다.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경기침체 국면에서 보편으로 물가 충격을 가하고 선별로 차감하는 행태가 무한 반복되는 사이 중산층이 서민으로, 서민이 취약계층으로 내려가는 마태효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발생했던 난방비 사태가 대표적인 '보편 충격-선별 구제' 정책에 속하는데, 이게 왜 정책 실패인지 살펴보자. 정부는 유례없는 고물가 국면에서 난방비를 40% 이상 올려 에너지 대란 사태를 초래했다. 전국민이 무방비 상태에서 난방비 폭탄을 맞아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자, 정부가 100만여 가구의 취약계층을 구제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처럼 2000만 가구에 충격을 주고 100만여 가구만 구제하는 정책을 반복하면, 나머지 1900만 가구는 맨몸으로 물가충격을 받아내야 한다.
지금의 물가대란은 고유가 등 외부적 요인보다는 공공요금 정책과 같은 내부적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지금은 물가상승이 실질소득 감소, 구매력 저하, 소비 충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는 물가 대책을 마련할 때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보편 위험에 보편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물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책 수요자는 취약 차주가 아닌, 전국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민생곳간을 털어 나라곳간을 먼저 채우면 결국 민생도 경제도 망가지는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공공발 물가대란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가 얼어붙으면, 내수경제는 장기 불황 국면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해도 가계가 절대 소비를 줄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공공물가 급등으로 인해 가계소득이 줄어 적자가구나 한계가구에 신규 편입되는 가구가 늘어나게 된다. 공공기관 적자 해소가 급하다고 해서 가계 주머니를 함부로 털면 안 되는 이유다. 당장은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나라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소득은 증가세가 감소하는 수준을 넘어 마이너스 성장의 사선을 넘나들 정도로 중병을 앓고 있다. 실질국민소득은 2022년 -0.7%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는데, 올해 상반기에도 0.8% 성장에 그쳤다. 이처럼 국민소득은 공공발 물가대란이 불거진 2022년부터 사실상 성장을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고금리 충격에 노출된 코로나부채도 소득감소 요인 중 하나다. 펜데믹으로 인해 코로나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3%짜리 금리가 6%대로 2배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 이후 발생한 자영업자 코로나대출은 2019년 685조 원에서 2023년 1034조 원으로 증분만 349조 원이나 된다. 고물가에 고금리 충격이 겹치면서 비소비성 지출 부담이 급증했고, 결국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가계지출에서 세금/연금/이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22년 12.3%에서 올해 상반기 13.5%로 상승했다.
세 번째 문제는 공공발 물가대란이 저금리정책으로의 기조 전환을 지연시켜 민생 전반에 걸쳐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6번째로 금리동결 결정을 내렸는데, 그 이유는 물가상승 압력이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물가로 인해 고금리 충격이 장기화되면, 가계부채 잠재부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즉, 고물가는 고금리 경로를 통해 민생경제의 부채리스크로 전이된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공공발 물가대란 사태를 방치하면, 민생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특히,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민생재정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물가정책에 대한 이념적 접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민생경제가 직면한 물가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민생확대 재정'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보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특단의 물가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공발 물가대란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
그렇다면, 제대로 된 물가대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첫째, 공공요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넘지 않도록 물가관리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공요금이 지닌 공공성을 고려할 때, 공공물가가 일반 물가보다 낮은 선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 즉, 올해 공공요금 인상률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상한으로 삼고 그 범위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해 전기료의 최대 인상폭이 전년 물가상승률인 5%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면 된다. 공공발 물가 충격을 민생경제에 떠넘기는 지금의 방식은 일시적으로 공공적자 해소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공공발 물가대란 사태가 터지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정부의 최저임금 사례를 반면교사 할 필요가 있다. 경제 상황을 배제하고 단기적 관점에서 급격한 임금 인상을 단행하면, 추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첫해에 16.4%를 올리고 그다음 해에 10.9%를 올린 후 사실상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공요금 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부의 공공물가 정책은 민생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무모하고 충격적이다. 따라서 공공적자 해소는 중장기 틀 안에서 물가 충격을 완화하면서 연착륙할 수 있는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그 시발점은 공공요금 인상이 평균 물가상승률의 범위 안에서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둘째, 공공요금 인상이나 인하는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거쳐 이루어질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참여 주체들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지금의 구조는 합리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공요금 정책에 책임이 있는 참여 주체는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국민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부실을 관리할 책임이 있고, 공공기관은 자구노력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할 책임이 있고, 정책 수요자인 국민은 평가에 기초해 부담을 배분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책임의 주체인 정부는 공공기관 적자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을 내놓기보다는 모든 재정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영정상화와 연계해 재정지원 방안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모든 참여 주체가 책임성에 기초해 공공요금 인상과 인하를 결정할 수 있는 '공공요금 공론화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관행을 바로 잡고, 정부-공공기관-국민이 주어진 책임의 범위 안에서 공공기관의 적자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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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한 박사
ㆍ국민대학교 특임교수
ㆍ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ㆍ전) 농협금융연구소 소장
ㆍ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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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곳간 털어 나라곳간 채우는 정부... '나라 망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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