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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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하는 얼굴들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커다랗게 조각된 러시모어산(山). 1927년부터 1941년까지 무려 14년에 걸쳐 만들어진 조각으로 5.12㎢나 되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머리 부분의 높이만 60m에 달한다.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이지만 라코타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침략적인 조형물이다.
이 장소는 당시 미국인들이 영토를 넓히면서 원주민들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러시모어산은 본래 그 지역 원주민 사이에서 '여섯 명의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1885년 변호사 찰스 E. 러시모어(Charles E. Rushmore)의 원정 이후 그의 이름을 따서 '러시모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처음에는 장소의 이름이 바뀌고 그 후에는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겨지면서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의 흔적은 사라지게 되었다.
첫 번째로 조지 워싱턴을 새긴 조각이 완공되고 두 번째인 토머스 제퍼슨에 이어 1937년에 세 번째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까지 새겨졌을 때, 미 연방의회는 네 번째 얼굴로 여성참정권 운동의 지도자인 수전 B. 앤소니(Susan B. Anthony)를 추천했지만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얼굴들에 여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나는 지금 차라리 다행이라고 느낀다.
러시모어 조형물의 책임 조각가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은 백인우월주의단체 KKK(Ku Klux Klan) 회원이었다. 그가 남긴 또 다른 조형물이 있다. 바로 조지아주(州)의 스톤 마운틴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에서 "조지아주 스톤 마운틴에서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하자"면서 언급하는 그 스톤 마운틴이다.
스톤 마운틴은 로버트 리(Robert Edward Lee) 남부 사령관,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Finis Davis) 남부 연합 대통령, 토머스 스톤웰 잭슨(Thomas Jonathan Jackson) 장군 세 명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세계 최대의 부조이다. 2015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애틀랜타지부는 스톤 마운틴의 부조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부군의 영웅이란 노예제도를 찬성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오늘날에는 영웅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흑인 민권운동의 성장에 따라 이처럼 인종차별적 조형물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권력은 왜 조형물에 집착하는가.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를 기리는 크고 작은 동상이 4만여 개나 된다고 한다. 공원이나 광장처럼 대중적인 공공장소에서 커다란 동상을 만나면 우리는 그 동상의 주인공을 기억하게 된다. 동상을 세우는 행동은 비非물질의 기억을 물질적으로 재현하는 정치 행위이다.
러시모어 조각 작업에 참여한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ółkowski)는 훗날인 1948년 라코타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성난 말'이라는 뜻의 크레이지 호스는 1876년 리틀 빅혼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인물로 라코타 원주민들의 영웅이다.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의미의 조형물인 셈이다.
사라지는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