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고생단잠을 자고 갑판으로 나왔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과 하루 전 예보에도 없던 비였다.
안사을
직장에서 나의 별명 중 하나는 '날씨 요정'이다. 나들이든 출장이든 나와 함께 있으면 일기예보가 바뀌면서까지 화창한 날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나는 좋은 날씨를 몰고 다닌다. 설악산 대청봉 세 번, 한라산 백록담 세 번을 갈 동안 안개도, 구름도 없었다. 나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 또한 단 한 번 만에 성공한 사람이다.
이런 날씨 요정마저도 울릉도의 '비님'은 이길 수 없었나 보다. 불과 하루 전 예보에도 없던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첫 번째 계획한 여정이 해변에서 핸드드립으로 모닝커피를 여유 있게 즐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를 피할 곳도 생각해 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비를 만나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 망연자실했다.
갑자기 내린 비에 항구 근처 두 곳의 편의점은 진즉 우산이 동났다. 비옷마저도 못살 줄 알았는데 두 번째 가본 편의점에서 마지막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동행인이 배에서 내릴 때 발 빠르게 청소하시는 직원에게 부탁해 받아낸 커다란 비닐 덕분에 달구지와 가방 속 짐들도 다행히 지켜낼 수 있었다.
둘째 날 오후에도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이미 한 차례 위기를 겪었기에 자신만만하게 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했다. 달구지 속 짐들을 모두 비닐로 꼼꼼히 쌌고 비를 맞아도 되는 물건들만 자전거 짐받이에 실었다. 그런데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울릉도의 날씨에 두 번째로 보기 좋게 당한 셈이었다.
두 번째 고생 : 뜻하지 않은 근력 운동
분명히 인터넷 수기에서는 "전기 자전거로도 오르기 힘든 오르막이 딱 두 군데 있습니다"라고 나와 있었다. '오를 수 없는'이 아니라 '오르기 힘든'이었고, 딱 두 군데라면 밀고 올라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단연코 주장하건대, 그 블로거는 내가 갔던 길로 안 갔을 거다.
첫 밤을 보낼 곳을 찾을 겸 울릉도를 시계 방향으로 훑기로 했다. 사동항에서 출발하여 거북바위를 거쳐 남서리, 태하리를 지나 현포리까지 가면 울릉도의 서편을 돌게 된다. 학포 야영장(선착순 유료 캠프장)의 자리는 애당초 포기하고 남서리의 무료 야영장으로 향했다.
자리는 맡지 못했고, 우산국 박물관을 관람한 후 모노레일을 이용해 남서 일몰 전망대에 올랐다. 불과 두 시간 전에 시간당 5mm의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절벽과 바다 사이에 그림처럼 나 있는 도로를 바라보며 '역시 울릉도의 오르막이 심하지는 않군'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