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산 발굴장 입구에서 마지막 기념사진과 설화산 208구의 유해와 유품을 상자에 보관한 모습
김영희
아산은 왜 붉은 피로 물들었나
대전유족회장 전미경 작
일제 삼십 육년 해방가를 부르며 봄인가 했더니
하룻밤 꿈이었나
동족상잔 전쟁이 웬 말이요
오뉴월 뙤약볕 아래 피땀 흘려 기른 곡식
식솔들 주린 배 채워 줄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추럭에 실려 성재산 방공호에서
머리에 가슴에
총구멍 뻥뻥 뚫려 붉은피 쏟으며
황천길이 웬말인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만삭의 어머니
그리고 열 식구 몰살
용암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분노
가슴속에 불덩이 홀로 쓸어안고
끝내 저세상 가신 아버지
이 나라의 국민임을 인정하는 도민증을
어찌하여
저승가는 살생부로 악용했더냐
남녀노소 젖먹이 영유아까지
두 손은 새끼줄에 묶은 채
몽둥이 찜질에 전기고문 생매장까지
고문 방법도 쪽발이 한테 배운 그대로
탕정면 뒷산 방공호 속에 널브러진
매곡리 주민들
세상이 망해도 용서 못 할 인간 백정들의 살인 축제
내 동포 형제를 이유도 없이 척살하는
저기 저것이 사람이냐 짐승이냐
부역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돌 반지 끼고
엄마 등에 업혀
설화산 방공호 속에 죽은 아가야
서러워 울지 말고 다음 생애는 동족상잔
비극 없는
세상에 환생하여 천수를 누리거라
민중의 지팡이로 세워진 경찰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러 아산 땅 골짜기마다 핏빛으로 물들이고
쇠판이골 염통산 방공호 폐금광에서
눈보라치는 엄동설한 주린 배 움켜쥐고
언 발 동동 구르며
오늘은 고모 집으로 내일은 삼촌 집 문전으로
하늘에 땅에 소리쳐 불러도
대답 없는 아버지 어머니
저 피맺힌 고아들의 통곡 소리 들리는가
원통해 저승길 못 가고 흐느끼는 원혼들
하루아침에 온 가족을 몰살시킨 천인공노할 만행을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하오리까
역사의 한 축으로
어느 발굴장이나 참혹하지 않은 지역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설화산 발굴장이 가장 충격적이고 잔인한 발굴장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가족 모두가 몰살당해 사연도 거의 없고 부모나 자식, 형제도 남아 있지 않아 (증언해 줄) 유족들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 태어나면 대대손손 후손을 남기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집안이 몰살당해 후손이 끊긴 것이다. 과연 이념이 무엇이길래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섭리와 이치까지도 단절시켰을까. 이러한 행위는 혈통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필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긴 엘리 위젤의 <나이트>와 에디트 에바 에거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를 보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극이 떠오른다.
"유대인은 아리안의 땅에 우리와 인종이 다르다." 나치는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혈통의 싹을 자르기 위해 '뉘른베르크 법'을 만들어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불임수술을 시켰다. 나치의 무도한 행위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행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나치 대학살극을 국가 차원에서 사과하고 반성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부헨발트 수용소도 기념관으로 보존, 관리하여 역사의 한 축으로 남아 있다. 훌륭한 관광지로 거듭나 예약하지 않으면 방문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암흑의 역사는 수치가 아니라 '미래의 등불'이다. 이것은 독일의 또 다른 저력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인권 문제'로 접근하여 국가가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또 전국의 집단학살지 532지점을 발굴하여 유해와 유품을 기념관에 보존과 전시하여 '역사의 한 축으로' 남기길 바란다.
끝으로 유해 발굴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 오세현 전 아산시장과 이창규 전 아산시 부시장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