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3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높이 36.8cm. 국립중앙박물관. Y축에서 바라본 천문(天門). 도4 육서통 기(?) 자. X축에서 본 천문(天門)과 구름. 그림:《빗살무늬토기의 비밀》(김찬곤, 뒤란, 2021)
김찬곤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는 1916년 평안남도 용강용반리유적에서 그릇 조각 몇 점이 처음 나왔고, 그 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쏟아져 나왔다. 빗살무늬토기는 1916년 용강용반리유적을 기점으로 하면 107년째 되어 가고, 서울 암사동을 기점으로 하면 98년째 되어간다. 하지만 근대사학 100년 동안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는 그때도 '기하학적 추상무늬'였고, 지금도 여전히 기하학적 추상무늬이다. 이 그릇에 맨 처음 이름을 붙인 이는 일본 사학자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다.
후지다 료사쿠는 1930년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연구할 때 핀란드 고고학자 아일리오의 책을 참고했는데, 그가 이 토기를 일러 독일어로 '캄 케라믹(kamm keramik, 빗 질그릇)'이라 한 것을 '즐목문(櫛目文 빗즐·눈목·무늬문)토기'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櫛目(しめくし目)'은 머리를 빗었을 때 '머리카락에 남는 자국'을 말한다. 그 뒤 우리 학계에서 이 즐목문토기를 '즐문토기' '빗살무늬토기'로 옮겨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빗살무늬토기'는 1960년 북한 사학자 도유호가 가장 먼저 쓴 말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빗살무늬토기' 하면 보통 빗 같은 무늬새기개로 무늬를 새겼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빗살무늬토기는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빗살무늬토기 이미지 자료 6,699점과 발굴조사 보고서를 살펴봤는데 빗 같은 무늬새기개로 새긴 그릇은 단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간혹 그릇 조각을 깨뜨려 그 깨뜨린 면에 생긴 이로 그릇 몸통 빗줄기(雨) 패턴을 새긴 것은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30점도 되지 않는다.
빗살무늬토기는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까지 거의 모든 지역에서 나온다. 대체로 세계 신석기인들은 그릇 표면에 구름(삼각형 구름과 반원형 구름)과 비를 새겼다(도1,2 참조).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구름·비 패턴과 농사하고는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한반도 또한 신석기의 시작과 농사의 시작은 일치하지 않는다. 아주 원시적인 농사의 흔적도 기원전 4천 년 전쯤으로 잡고 있다. 이도 최대로 내려잡았을 때다. 하지만 그릇은 그보다 훨씬 이전 기원전 8500년부터 빚어 썼다. 그러니까 그릇과 농사의 시작은 꼭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한반도 신석기인을 비롯하여 세계 신석기인은 그릇에 자신의 세계관을 새겼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 세상 만물의 기원 물(水), 이 물의 기원 비(雨), 이 비의 기원 구름(云)을 새겼는데, 한반도 암사동 신석기인은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바로 구름의 기원 '하늘 속 물'과 이 하늘 속 물이 나오는 통로(구멍) '천문(天門)'까지 새긴 것이다(도3,4 참조). 이 세계관은 '기원의 기원'까지 담았다는 점에서 당시 세계 신석기 세계관 가운데서도 가장 앞서 있는 세계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