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5일, 당시 한나라당의 언론장악 7대악법에 반대하며 파업중이었던 MBC노조 박성제 위원장(가운데)과 노조원들이 5일 오후 서울 남산 팔각정앞에서 '조중동 방송 안돼! 재벌방송 안돼!'가 적힌 풍선을 날리기 위해 올라가고 있다.
권우성
우선 재미있다. 난 콘텐츠의 최고 덕목은 재미라고 본다. 제아무리 위대한 사상과 고매한 철학을 논해도 받아들이는 이가 졸면 끝이다. '무슨 무슨 포르노' 같이 맥락 없이 추구하면 안 되지만, 선을 지키는 재미는 중요하다. 그리고 선을 지키면서 재미있게 쓰기는 정말 어렵다.
그 점에서 이 책은 4분의 3지점까지 재미있다. MBC라는 콘텐츠 공룡의 수년, 마이크로한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MBC가 '엠병신(적절치 않은 단어가 거듭 등장해 송구하다. 장애인과 가족께 특히 그렇지만, 당시 상황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단어를 쓴다)'이라는 욕을 듣다가 신뢰도 1위에 등극하고, 적자에 시달리다가 흑자에 이르게 된 일을 속도감 있게 묘사한다. '쳇, 잘난 체야'라고 했다가, '그래, 그랬으니 그랬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 박성제는 방송기자다. 신문기자 출신인 내가 보는 방송기자의 장점은 묘사와 기술이 생생하다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본 양, 그리고 삼촌이 조카에게 "그때 말이야, 그놈들이…"라고 말하듯 들려준다. 방송 뉴스는 중학교 2학년이 한 번 듣고 이해해야 한다.
박성제의 글쓰기는 그 기본에 매우 충실하다. 근현대 서양 철학자 번역서 같지 않고, 어느 한 대목 두 번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눈이 가는 대로 읽으면 된다.
난 정말 좋은 책은 독자에게 어쩔 수 없이 줄을 긋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책을 읽다가 몇몇 문장에 줄을 그었다.
박성제는 MB 정부 때 해직 기자가 됐고, 문재인 정부에서 복직돼 보도국장이 되고 사장이 됐다. 그 과정 자체가 드라마틱한데, 그걸 드라마틱하게 썼다. 위에서 '재미'를 언급한 부분이다.
그리고 국장과 사장을 하면서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을 진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만들기 위해 무슨 부침과 역경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진 일'이다. 그 수년의 난리 통에 MBC라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당사자에게 듣는 것만큼 재미난 콘텐츠는 없다. 미국에서 대통령이나 주요한 참모(aides)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가 그래서다.
지상파 방송이 OTT와 유튜브에 밀리는 현실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민도 책에 들어있다. 이는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 출판 등 콘텐츠 업계의 공통 고민이 아닐까싶다.
'심심할 수 있는 부분'에 담긴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