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로 광주에도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탈핵우산 속 오하라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태옥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까지 쌓인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다양했다. 한눈에 봐도 독서량이 상당했다.
"남편 책이에요."
남편 이야기에 한국에서 탈핵 운동하는 일본인 오하라씨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온 사연이 궁금해졌다.
"한국의 역동적 에너지가 좋았어요."
일본 단기대학에서 공부하던 오하라씨는 1995년 일주일 동안 홈스테이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첫발을 딛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동안 경험한 한국이 너무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도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있었고,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사고나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둡고 탁한 색이었는데 한국에 와보니 알록달록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저와 잘 맞더라고요."
일본에 돌아가서 '한국으로 유학 가겠다'라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감정적으로 유학을 결정하면 안 된다"라며 먼저 직장생활을 권하는 바람에 교수님 말씀대로 단기대학 졸업 후 취직하고 섬유회사 영업 사무원으로 2년을 보냈다.
직장생활은 재미있었고 사회생활은 또 다른 배움을 주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오하라씨는 교토에 위치한 리츠메이칸 대학 국제관계학부 3학년으로 편입한다.
"일본 대학은 3학년부터 세미나에 들어가요. 그리고 마지막 과정이 논문이지요. 세미나 주제를 고르는데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계시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지요. 교수님도 엄청나게 반가워하셨어요. 저와 비슷하게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고(故) 나카무라 하쿠지(中村福治) 교수는 오하라씨에게 한국 유학을 권하며 전남대를 추천한다.
"2000년이 5·18민중항쟁 20주년 되는 해였어요. 전남대로 유학 가면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며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닌 전남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오하라씨는 2000년 전남대 사회학과 교환학생으로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사회학과 사회조사실습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위해 우연히 구성된 팀의 한 남학생과 오하라씨는 화순 한천면 등지를 돌며 1945년 이후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관련 사회조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가까워졌고 결혼을 약속했다.
"자기 신념을 지키며 평생 운동하면서 살겠다는 이 남자가 멋있더라고요. 일본 대학에서 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희귀생물 같은 존재였어요."
남자친구는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하고 오하라씨는 일본으로 돌아가 나머지 학업을 마친 뒤 다음 해인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국경을 넘은 장거리 연애가 결혼으로 열매를 맺고 아이도 낳았다
"돈은 꼬박꼬박 벌어오더라구요.(웃음) 남편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무렵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진 오하라씨는 2007년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 공채로 들어간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남편과 주변 사람들도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사람들 삶이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웃음)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서 맡은 업무는 회원 관리와 회계, 소식지, 환경교육 등이었다. 애초 오하라씨가 생각했던 것과 업무 영역이 달랐고 외국인이 단체 활동가로 근무하는 것은 생각보다 장벽들이 많았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배 동료들로부터 배우며 많은 일을 해냈다.
"광주와 가까운 영광에 핵발전소 6기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크게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어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엄청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광주에서 불과 35~50km밖에 안 되는 곳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내가 사는 곳에서 탈핵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오하라씨는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알고 싶었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국에 알리며 본격적인 탈핵운동을 시작한다.
영광 한빛핵발전소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졌고 연대기구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아래 광주전남행동)이 만들어졌다.
광주전남행동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거의 매년 탈핵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탈핵영화제도 열었고 탈핵 피켓팅과 서명운동 등도 꾸준히 진행했다. 또한 '한빛핵발전소대응호남권공동행동'과 연대해 한빛핵발전소 대응활동도 벌이고 있다. 오하라씨는 현재 광주전남행동 교육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광주전남행동에서 나온 카드뉴스나 집회 웹자보를 보면 '잘 만든다' 싶었는데 오하라씨 작품이라니 놀랍고 반가웠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 동안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면서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여러 환경운동 중에서도 탈핵에 특화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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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연결된 삶을 그리며 오늘도 바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영광에 22년 살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빠른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꿉니다.
생태와 자연, 젠더와 영성에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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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류 직전 후쿠시마 바다의 모습,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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