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을 살려낸 일본인 의사 모리야스 렌키치의 회고담1909년에 피습당한 이완용을 살려낸 일본인 의사 모리야스 렌키치의 회고담이 실려 있는 ≪조선 통치의 회고와 비판≫ @김슬옹
김슬옹
그가 말한 자객은 우리에게는 적군(일본)에게 사형당한 독립투사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이재명 독립투사는 사형당했지만, 이완용은 악착같이 살아 무려 16년을 더 살다가 1926년에 죽었다.
의사에게 아군과 적군의 구별은 필요 없지만, 일본인 의사의 책무와 실력이 우리에게는 매국노인 이완용을 살려 한국민에게는 또 다른 고통을 주었으니 모리야스 렌키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회고담을 보면 단지 의사로서의 책무뿐만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시선도 당연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식민 지배에 직접 관여한 일본인 90명이 쓴 이 책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97년이었으니 이 책의 번역서를 내기까지 26년이 걸렸다. 번역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극우의 입장을 대변하고 지금도 일본 극우를 편드는 이들의 주요 논거가 될 이 책을 과연 번역해서 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고민이 많았다.
최종 결론은 우리에게 아픈 역사이고 분노가 치미는 기록이지만 꼭 알아야 하는,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역징비록'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1997년 무렵 일제 강점기의 국한문 혼용 문체를 연구하다가 단국대 허재영 교수 소개로 이노우에 카쿠고로(井上角五郞)가 쓴 "협력하고 융합하여 복지를 도모하자"라는 글을 보고 나서였다.
이 글의 요지는 일본이 자신들의 조선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국한문체를 조선의 주된 문체로 해야 하는데 자신의 노력으로 실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주장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유길준의 서유견문식과 최남선 기초 기미독립선언문식 국한문혼용체에 일본 영향이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
매우 중요한 글이라 생각되어 '이노우에 가꾸고로오(井上角五郞)/김슬옹 옮김(1998). 협력하고 융합하여 복지를 도모하자. <한글새소식> 308호. 한글학회'로 발표한 바 있다.
'이노우에'는 우리나라 초기의 신문 발행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동안 오늘날 남한 사회에서 국한문 혼용이 줄기차게 남아 있는 것은 일본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꽤 있었다(려증동, 허재영, 조규태, 김종택). 그런데 그것을 주도한 일본인 이노우에 카쿠고로가 그의 행적을 스스로 고백한 글을 접하게 된 것이다.
고통스러운 읽기가 필요한 이유
이 책에는 조선 말기의 폭정과 가렴주구(가혹한 세금과 재물 약탈)가 자주 언급된다. 언급하는 이유와 의도는 분명하다. 조선 민중을 그런 폭정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일본이라는 것이다. 조선 말의 폭정과 가렴주구는 사실이다. 그래서 민중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일본은 남의 땅에서 조선 민중을 동학당이라는 이름의 폭도로 규정해 무참하게 총질을 해댔다. 그런 사실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니 진정한 회고는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쓴 과거일 뿐.
<조선통치의 회고와 비판>에 일본들의 자화자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완용을 치료한 의사 이야기처럼 우리가 저들의 고백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객관적 사실 정보도 꽤 많다.
식민 지배를 위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울였던 저들의 노력(?)의 실체를 아는 것은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책을 '고통스러운 번역, 꼭 알아야 하는 역사'라는 명목으로 번역 출판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명 의사를 우리가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 책의 고통스러운 읽기가 필요하다.
조선통치의 회고와 비판 - 일본인이 쓴 [역(逆) 징비록]
신한준, 김슬옹 (옮긴이),
가온누리(도서출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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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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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사 칼에 찔린 이완용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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