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김준연의 묘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 190호)
임재근
국내 다른 언론도 손기정 사진에서 일장기를 빼기 위해 여러 기지를 발휘하는데요. 여성 월간지 '신가정'에는 손기정 다리 사진만 게재합니다. 당연히 종로경찰서 형사들이 찾아오는데요. 일장기를 내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 따져 묻습니다.
이에 '신가정' 주필 변영로는 "손기정 선수가 무엇으로 세계를 제패했다고 생각하는가. 그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무쇠같은 다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다리만 실은 것이다"라며 당당히 맞섭니다. 그에 포기하지 않은 일본인 형사들이 사무실을 샅샅이 뒤져 나머지 부분을 찾아내는데요. 다행히 잡지에 실린 사진은 일장기 운동복을 입은 손기정 사진이 아니라, 양정고등보통학교 시절 손기정 사진에서 잘라진 부분이 발견되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귀국길에 오릅니다. 일제는 이번에는 손기정을 기차가 아닌 비행기에 태워 귀국시키는데요. 만약 철로를 따라 귀국하게 되면 손기정이 가는 곳마다 우리 민족이 몰려들어 민족 저항 의식이 높아질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려한 일제는 베를린-인도-싱가포르-일본-조선 항로를 따라 비행기로 손기정을 실어 날랐습니다.
손기정 일행이 싱가포르에 도착했을 무렵 손기정은 한 선배로부터 경고를 듣게 되는데요. 조선에서 일장기 말소 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다치고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습니다. 손기정이 가는 곳마다 일본 경찰이 손기정을 감시했고, 마치 사상범 다루듯 몸 수색도 서슴지 않았는데요.
손기정은 "차라리 마라톤 우승을 반납하고 싶다"며 "나라 없는 민족에겐 올림픽 우승을 기뻐하고 축하할 기회조차 없었다. 올림픽 우승자도 일본인들에겐 한낱 천덕꾸러기요, 성가신 인물이었다"고 당시 심경을 이야기했습니다. 일제는 이후에도 손기정 선수가 구심점이 되어 민족의식을 고조시킬까 항상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나의 길고 긴 싸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