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촌 김학수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어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이에 이방원은 "세자, 성군이 되거라. 네가 성군이 되면 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네가 그렇지 못하면 나는 괴물로 남을 것이다. 이제 너의 차례다. 나는 여기까지다"라고 말하며 아들 충녕대군에게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드러낸다.
이 장면은 태종이 조선 제4대 왕 세종에게 양위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몇 년 전에 방영했던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첫 회에 나왔던 부분이다. 주연 배우의 소름 끼치는 연기로 시청자들을 압도했던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드라마 각색이지만 실제로 조선의 '창업 군주'로 불리는 태종은 어린 아들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도록 외척들을 척결하고, 미래의 정적들을 사전에 제거하여 세종의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과거의 모든 악업들을 떠안고 간 아버지 덕분에 세종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큰 뜻을 펼치며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조선을 다스렸던 27명의 왕 중에서 최고의 성군을 낳은 태종 이방원의 업적 또한 어느 군왕 못지않다. 일각에서는 '세종의 아버지 태종'이 아니라 '태종의 아들 세종'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태종의 탁월한 선택으로 탄생한 세종대왕 이도(世宗大王 李祹 1397~1450). 21살 때 조선 제4대 국왕으로 즉위하여 32년 동안 재임하면서 말이나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대왕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우리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군(聖君)'과 '성웅(聖雄)'으로 추앙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버지 태종의 바람대로 성군이 된 세종대왕은 정치, 경제, 문화, 국방,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은 누구나 다 알듯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다.
농사에 관한 책을 펴냈으나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한 세종은 누구라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모두 백성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니 이보다 더한 업적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것도 다 세종대왕 덕분이다.
세종실록이 기록한 한글 창제의 순간
세종은 등극한 지 25년이 되던 1443년 12월 하순에 한글을 완성하는 대업을 이룬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력을 잃어가며 10여 년을 연구한 결과였다. 사람들이 말할 때 내는 발성 기관의 모형을 본떠 만든 자음 17자. 하늘, 땅, 사람 등 자연의 조화를 본뜬 모음 11자. 총 28개의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