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대구시민공익지원센터 상상홀에서 열린 <민족의 영웅 홍범도> 북콘서트에서 평전을 쓴 이동순 명예교수가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조정훈
또 홍범도 장군이 돌아가신 후 러시아의 한 신문에 '볼세비키의 충실한 전사'라는 대목을 들어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구소련 체제 하에 살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분에 대한 미담 정도로 생각해야지 공산주의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확장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과 관련해 이 교수는 "당시 장군이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부하들을 먹이고 입히고 하려면 당원이 되어야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면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역할을 하셨다"고 강조했다.
자유시 참변에 홍범도 장군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도 "홍범도 장군이 처음에 상해파를 지지하다가 방침을 바꾼 게 맞다"면서도 "이르쿠츠크파를 지지한 것은 일단 러시아 땅에 들어온 이상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맞고 그 다음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그들에게 청하자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무기 반납에 불응하다가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것 같다는 것을 지휘관으로서 직감했고 무기를 반납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 것"이라며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홍범도 장군이 부하들을 데리고 이르쿠츠크로 떠나가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고 엄청난 비극이 발생하자 홍 장군이 급하게 돌아와서 슬피 울고 통곡을 하며 뒷정리를 하면서 시신을 수습했다"며 "생포된 600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스스로 재판관을 자청해 참여하고 570명을 석방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레닌을 만나 나머지 30명도 석방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홍범도 장군은 자신뿐만 아니라 두 아들과 부인까지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됐다"라며 "국방부 공식 문서를 보면 이게 어느 시대 문서인지 탄식이 나올 정도"라고 흉상 철거와 동상 이전에 대해 강하기 비판했다.
이어 그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다는데 흉상을 방치하게 놔둘 게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 모시자"며 "대구만이 아니라 삼천리 방방곡곡 우리 한국인들의 가슴 속으로 장군을 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직접 쓴 시 '하늘에서 만난 홍범도 부부'를 진행자 조영주씨와 함께 낭송을 하고 북콘서트 말미에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를 당하기도 했던 '홍범도 장군의 절규'를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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