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콘서트 사진
물고기뮤직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끝내 뒤에 나와 아내는 거실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곧 있을 강의에 관한 PPT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슬쩍슬쩍 곁눈질로 아내를 바라보며 속으론 그거 되려면 어디 속도 좋은 피시방에라도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잔뜩 품었다.
드디어 운명의 저녁 8시가 되었다. 아내는 뚫어져라 핸드폰을 바라보았고, 손가락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화면을 3배속으로 돌린 듯 빠르게 움직였다. 나도 잠시 멈추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긴장되었는지 심장이 쿵쾅거리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오빠 큰일 났어."
아내가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는데. 안에 담긴 숫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기 18만이 훌쩍 넘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던 얄팍한 마음을 탓했다. 심지어 튕겨 나갔단다.
그만 포기하면 좋으련만 아내는 기를 쓰고 다시 접속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받은 숫자는 전보다는 나았지만 3만 명 대였다. 그리고 또다시 사이트에서 튕겨 나갔단다. 임영웅이 국민 가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어머니의 꿈은 이제 저 멀리 구름 너머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리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빠, 봐봐."
헐. 이제 숫자가 천 단위 안으로 들어왔다. 좀 전에 짙은 구름 속에 갇힌 꿈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려 열심히 허우적대는 듯 보였다. 숫자는 이제 점점 작아졌다. 이제 나는 작업도 잊은 채 아내 옆에 꼭 붙었다. 무의식적으로 아내 팔을 꽉 잡았다. 10초, 9초, 8초, 7초….
"와! 예매되었어!"
우리는 로또라도 당첨된 듯 부둥켜안고 콩콩 뛰기 시작했다. 놀란 아이들도 방에서 뛰쳐나왔다.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이란 말인가.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함께 뛰었다.
얼마 지났을까. 아내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좌석 설명을 했다. 비록 2층이지만 1층부터 길게 연결되어 있어 임영웅이 올라올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화면으로 보니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었다.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는데 물어보니 너무 좋아했단다. 지금껏 어머니가 흥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표를 2장 예매해서 작은 이모님과 함께 가기로 했다는데 아내 덕분에 어머님께 잊지 못할 선물을 드렸다.
다음 날 어머니께서 나에게 바로 연락이 왔다.
"나, 동네방네 소문냈다. 사람들이 얼마나 웃긴 줄 아니. 평소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도 연락이 와서 같이 가자고 하지 뭐냐. 내가 동생이랑 간다고 하니 어찌나 실망하던지. 주변에서 며느리 잘 얻었다고 난리가 났다. 나 이제 소원 다 풀었다. 너도 아내에게 잘해라."
어머니가 좋은 건 알겠지만 왜 끝이 아내에게 잘하라는 당부인지. 아무튼 어머니가 저리 기뻐하고, 아내도 점수를 많이 딴 듯해서 좋았다. 물론 앞으로 본가에 갈 때마다 가뜩이나 많이 듣는 임영웅 이야기는 더욱 늘어날 듯 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