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김백일 동상 철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는 2019년 3월 1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김백일 동상 옆에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윤성효
아울러 '건군 75주년'에 담긴 함의도 되새겨보게 된다. '75주년'에서 알 수 있듯, 건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맥을 같이 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된 직후인 1948년 8월 15일을 국군 창설일로 삼고 있어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국군 창설일로 삼는 건, 우리 정부와 국군의 정통성이 분리될 수 없음을 명토 박은 것이다.
특이한 건, 8월 15일을 국군 창설일로 삼고 있는데 국군의 날은 따로 지정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국경일인 광복절과 정부 수립일 등이 겹치는 점을 부러 피한 걸로 보인다. 6.25 전쟁이 끝나고 3년 뒤인 1956년 이승만 정부가 10월 1일로 지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줄곧 공휴일이었다가 문민정부 출범 직전인 1991년에 제외되었다.
왜 하필이면 10월 1일로 정했을까.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서울을 수복한 후 우리 국군이 북진하면서 38도선을 통과한 날을 기리기 위한 취지라는 게 정설이다. 강원도 양양 지역의 국군 3사단 23연대가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세에 의한 분단의 상징인 38도선의 돌파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김일성이 '조국 해방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38도선을 넘어 불법 남침했고, 이승만은 관제 데모까지 종용해 '북진 통일'을 부르대며 다시 38도선을 넘었다. 그렇게 38도선은 남과 북 서로에게 무력 전쟁을 통해서만 허물 수 있는 경계선으로 굳어졌다.
얄궂게도, 38도선을 돌파한 당시 3사단장은 간도특설대 창설을 주도해 일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친일파 김백일이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의 항일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창설된 특수부대다. 그는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독립군 토벌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정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중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북 분단이 고착화하고 38도선 돌파일이 국군의 날로 지정되면서, 6.25 전쟁은 시나브로 대한민국 국군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북한은 응징해야 할 주적이 됐고, 미국을 비롯해 우리 편에 선 국가는 형제국이자 우방이 됐다.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에 맞서 전공을 세운 이들은 지금껏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전쟁 이전의 행적을 깨끗이 지워냈다. 김백일처럼 '구국의 영웅' 중 상당수는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일제의 주구였지만, 친일반민족행위의 죄과는 전공에 덮여 별일 아닌 걸로 치부됐다. 반대로 북한 편에 선 독립운동가들은 '구국의 영웅'의 손에 모조리 처단됐고 그 후손들은 연좌제의 굴레 속에 혹독한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요컨대, 국군의 날이 진정 기념일 지정의 취지를 살리려면 '뿌리'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다. 아무리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기로서니 대한민국 국군의 날에 한미동맹을 경축해서야 되겠는가. 우리 스스로 동맹의 '하위 파트너'를 자임하는 마당에 우리 국군의 위용 운운하는 건 낯부끄러운 일이다. 과연 미국에서도 10월 1일에 한미동맹을 기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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