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책성 댓글글쓴이를 질책하고 충고하는 댓글이다.
곽규현
다음으로는 나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고 충고하는 댓글도 고맙게 받아들인다. 나도 과거에 내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성찰하는 의미에서 지난번 글을 썼다.
이런 질책성 댓글을 달아준 독자들은 나의 입장보다 고생한 아내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표하고, 나로 하여금 앞으로 아내에게 더욱 잘하라는 충고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독자로서 글쓴이에게 따끔하게 충고하고 싶었을 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런 댓글들은 나를 더 분발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나를 비난하는 댓글을 대하는 마음은 복잡하다. 그런 댓글을 남긴 독자들은 내가 아내를 혹사시킨 나쁜 남편으로 비췄기 때문에 화난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내 욕심만 차리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난하는 댓글도 내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의 과거 허물을 냉철하게 점검하는 계기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적절한 표현으로 비난을 하는 것은 글쓴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차마 이 자리에서 밝히기도 낯뜨거운 원색적인 용어로 대놓고 공격하는 것에는 나의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참담함을 떨칠 수가 없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기분이 멍해지고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저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 살아온 걸까'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비난을 하더라도 이왕이면 글쓴이의 입장도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좀 걸러서 표현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도 나의 이기적인 욕심인가.
아무튼 공감하는 댓글이든, 질책성 댓글이든, 비난성 댓글이든 모두 나의 글에 관심을 가져준 점에서 고맙고 감사하다. 댓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글쓴이의 마음에 달려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댓글 하나하나에 연연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외시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원색적인 악플도 자주 접하다보면 면역도 생기고 맷집도 강해져서 받아넘기는 요령도 생길 것이다. 독자들의 반응, 댓글을 담담하게 적절히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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