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시청에서 본 바닷가
Widerstand
노르웨이는 국왕을 고르는 과정도 독특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왕국이었습니다. 다만 스웨덴 왕이 노르웨이 왕을 겸하고 있을 뿐이었죠. 이제 스웨덴 왕이 노르웨이 왕을 겸직하지 않게 되었으니, 노르웨이에게는 새로운 왕이 필요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처음에는 스웨덴 왕의 아들 중 한 명을 국왕으로 모시겠다는 의사를 보였습니다. 독립은 했지만, 노르웨이는 스웨덴과의 우호관계를 여전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주변 유럽 국가에게, 자신들이 급진적인 혁명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줄 필요도 있었습니다. 공화정을 수립하지 않고, 왕국을 유지하기로 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고요.
하지만 스웨덴 왕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노르웨이는 덴마크에게 손을 내밀었죠. 덴마크 왕세자의 아들인 카를 공을 왕으로 모시겠다고 요청한 것입니다. 덴마크 왕실 역시 중세 노르웨이 왕실과 관련이 깊었고, 카를 공은 모계로 스웨덴 왕실과도 연결되어 있었거든요.
카를 공은 노르웨이가 독립 과정에서 보여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고심 끝에 노르웨이의 국왕 자리를 수락했죠. 다만 한 가지 조건이 붙었습니다. 국민들이 공화정이 아닌 입헌군주정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왕의 권위는 국민들의 지지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결국 노르웨이는 다시 한 번 국민투표를 치렀습니다. 유권자의 79%가 왕정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었죠. 카를 공은 그렇게 호콘 7세로 노르웨이 국왕이 되었습니다. 현재 노르웨이 국왕인 하랄 5세는 그의 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