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법원의 1호 대법정제1호 법정은 회생법원에서 이뤄지는 회생파산 관련 사건이 처리되는 공간입니다. 판사, 참여관, 파산관재인, 관리위원, 회생파산 신청인, 채권자 등이 이 법정에서 말하고 서로의 얘기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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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소리가 잦아든 늦여름의 월요일 오전 10시. 회생법원 2층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복도에는 다양한 향의 커피와 여러 주파수의 소음이 퍼지고 있었고, 1호 대법정 앞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사람이 눈에 띤다. 불안하고 초초해 보이는 이 여성들은 파산신청을 하고 채무자 신용교육을 위해 대기 중인 듯했다. 아마도 한 사람은 함께 온 친구일 것이다.
"오늘 알바는 어떡하지. 오후에 빨리 가봐야 하는데... 여기 교육이 빨리 끝나려나?"
"나는 쉬는 날이라 괜찮은데. 네가 걱정이네... 나는 법원에는 난생처음 와보는데. 원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나보네..."
긴 복도 여기저기에 핸드폰이나 시계를 쳐다보며 두리번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법원의 출석통지서를 받은 그들의 표정 속에는 긴장감과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묘하게 위압감을 주는 법원 내부의 삭막한 풍경이 이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었다.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최근 2030세대의 빚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30대 이전의 회생파산 신청자 수 또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청년세대의 현재와 미래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2/4분기 말 기준 20대 이하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44%로 전 연령 평균인 0.21%의 2배를 넘는다. 30대의 연체율 또한 0.17%로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다.
20대는 주로 전월세보증금대출 이자의 연체율이 높고, 30대는 주택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연체율 자체도 문제지만 신용불량 등으로 인한 취업 불이익이나 경제활동의 제약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청년층의 경제적 빈곤의 문제는 곧 결혼과 저출산 문제와 연결된다. 나비효과를 떠올리기 전에도 무엇보다 인과관계가 뚜렷한 사회현상이다.
청년계층의 개인회생-파산 신청이 증가하는 이유
서울회생법원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개인회생을 신청한 30세 미만 청년의 비율은 15.2%로 2020년 10.7%, 2021년 14.1%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30세 미만 청년 세대에서 가상화폐나 주식투자 등의 실패와 경제활동 영역의 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30세 미만 청년의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단축한 회생법원 실무준칙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회생법원의 실무준칙은 회생파산 업무처리의 통일성을 위한 기준이다. 이러한 실무준칙 제정으로 3년 미만 단축사건은 전체사건의 8.4%(1242건)로 비중이 높은 편이며 평균 단축기간은 27개월이다. 단축사유로는 30세 미만의 청년이 64.8%(805건)로 가장 높다.
하지만 이런 통계적 수치 이전에 보다 근본적으로 청춘들의 마음속에 쫓기는 뭔가가 있다. 누구나 그렇듯, 부자가 되고 싶은 평범한 욕망. 한 세대 이전보다 경제적 부와 그 과정에 더 밝은 세대가 지금의 청년세대가 아니던가. 그 전세대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아왔고 돈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세대다.
더불어 이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대폭적인 금리상승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저금리로 인한 경제성장 시기에 '빚도 능력이자 자산'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때문에 뜻밖의 경제적 상황 악화에 취약한 세대일수도 있다. 이러한 까닭에 청년세대를 위한 금융(자산)교육이나 신용교육이 필요하지만, 학교과정에서 금융관련 교육은 거의 전무하다.
또한 지금의 20, 30대는 각종 대중매체에 그려진 부유한 삶과 아파트 공화국의 소유권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언론의 큰 그림 속에서 성장했다. 이 청춘들에게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의 줄임말)은 경제활동의 과정이자 결과가 된다. 또한 '영끌'은 청춘파산 문제의 원인이자 경제적 파탄의 이유가 된다.
청년 계층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회생파산 신청자 수가 증가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20, 30대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는 반증이다. 기업의 채용규모 축소와 자영업자의 영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20, 30대의 취업률과 소득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동산가격 상승과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로의 유혹은 무리한 빚을 내기에 적절한 유인을 제공했다. 더욱이 청년 자체의 신용점수가 낮다보니 제2, 3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주거비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청춘파산의 덫에 내몰린 우리시대의 청춘들
여기, 상가수첩을 포장하며 봉고차로 다양한 거리에서 수첩을 돌리는 여성이 있다.
이야기 주인공인 백인주씨는 20대에는 신용불량자, 30대에는 파산신청자가 됐다. 어머니 사업의 부도로 뜻하지 않게 집안의 빚을 떠안게 되고, 서울의 각 동네를 떠돌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사당동, 신림동, 신당동, 대림동, 연희동, 개포동까지 누군가의 눈을 피해 일회성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물론 채권자들과 사채업자들의 끈질긴 추적과 신용불량으로 인해 단기성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다. 그는 빚 때문에 평범한 사회생활은 물론 연애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경제활동의 제약은 인생 전반의 제약이 된다.
파산 신청시 채권자 목록에 누락된 이들은 물론 목록에 있던 채권자들에게서도 다시 빚 독촉을 받는 주인공이다. 쉽사리 멘탈이 붕괴될 법도 하지만, 파산절차 관련한 법과 제도를 공부하고 버티며 악착같이 자신의 삶을 앞으로 전진시킨다. 개인파산 면책을 받은 후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파산면책을 받은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중략) 나는 등을 곧게 펴고 걸었고 안경 밑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모자를 눌러쓰지 않아도 되었다. (중략) 10년 만에 출옥한 죄수처럼 낯선 편안함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