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학춤 추는 그림. 혜원 신윤복의 인물 그림을 참고로 해서 붓펜으로 그렸다.
오창환
동래학춤을 처음 본 것이 딱 10년 전인데,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했던 연세 탈춤연구회 창립 40주년 기념 공연 때였다. '춤패 마구잽이'가 축하공연으로 학춤을 추었는데 어찌나 멋지던지! 까만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너풀너풀 추는 춤이 너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연락을 해서 학춤 강좌를 열었다. 춤을 배우면서 우리도 '춤패 연'을 만들었고, 학춤이라는 레퍼토리를 갖게 되면서 공연 요청도 꽤 많이 들어와서 적지 않은 공연을 했다.
학춤은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두루 공연할 수 있어서 좋다. 좋은 날에는 신명 나는 굿거리장단에 흥을 돋울 수 있고 슬픈 날이나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학의 말없는 동작이 슬픔을 위로해 줄수도 있다. 학춤은 혼자서 추는 홑춤도 괜찮고 둘이서 추는 대무(對舞)도 좋다. 보통 5학에서 7학을 많이 하지만 무대만 넓으면 수십 명이 군무를 추어도 멋있다.
동래(東萊)는 근대이전까지는 부산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초량에 왜관(倭館)이 설치되어 동래가 일본과의 무역 거점 도시가 되었다. 일본에서 오는 외교사절과 무역사절을 위해 수준 높은 기예를 가진 기생이 출연하는 잔치를 열어줬다. 국가에서 교방을 설치해서 관기들에게 예기를 가르쳤다. 그후로 동래교방이 유명세를 얻었다.
게다가 동래에는 온천이 있어서 예로부터 놀이 문화가 발달하였다. 동래 줄다리기 놀이를 하면 2만여 명이 모여서 몇 날 며칠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때 동래야류(野遊)와 동래 덧배기 춤을 추었다. 경상도 지방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춤에 기방예술이 더해져서 동래 한량춤, 동해 학춤이 만들어졌다.
흔히 학춤이라고 하면 학모양의 인형을 뒤집어쓰고 타이즈 같은 것을 입고 추는 춤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궁중학춤이고, 동래학춤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춘다. 궁중학춤은 학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대 반해 동래학춤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갓은 학의 검은 머리를 나타내고 도포자락은 학의 날개를 표현한다. 갓과 도포는 지금은 무대의상이지만 당시로는 일상 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