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박상환
– 시민사회와 협업을 많이 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학교 다닐 때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고,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이 여성단체에 많이 갔다. 그래서 처음엔 친구들의 개인적 요청으로 단체 일을 했다. 그러다가 친구는 일을 그만뒀지만 단체에서 계속 저에게 연락을 주고. 또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후원하는 단체가 많아졌는데, 단체 애로사항을 알게 되면 도와드리고…. 결국 이게 다 오지랖이다(웃음).
비영리단체가 대부분 열악하기 때문에 후원회원을 관리하는 등의 내부 시스템에는 공을 들일 수 없다. 그래서 저희가 후원회원 관리, 기부금 영수증 발급 등 시스템 관리를 도와 실질적인 업무를 단축하고 있다. 슬러기쉬 해커스의 소개 문구 중 하나는 '엑셀과 싸우는 시간을 줄여서 세상과 싸우자'이다.
그리고 과거 시민사회에서 IT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였다. 그런데 N번방 사건(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을 기점으로 '디지털이 문제의 현장'이라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각종 성폭력·성착취가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니 여성단체들이 기술자, 특히 여성 개발자들과 많이 협업하게 됐다. 그러면서 저도 단체들과 함께 많이 활동하게 됐다."
– 협업하면서 시민단체로부터 새로 알게 된 점도 많을 것 같고, 반대로 아쉽거나 고민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디지털 성착취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모니터링을 해보니 어떤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한 여성의 증명사진을 띄워놓고, 이 여성이 얼마나 성관계를 잘하는지 이야기하면서 신상정보를 팔고 있었다. SNS 계정은 얼마, 전화번호는 얼마, 집 주소는 얼마….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활동가들은 이런 게 늘 방송되고 있다고 하더라. 인류애도 많이 사라지고(웃음), 그때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내가 개발한 서비스에서 성착취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라고.
반대로 고민스러운 점도 있는데, 제가 무료로 혹은 소정의 사례금만 받고 단체 개발 일을 해주면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망가뜨린다고 주변에서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해당 단체는 그 정도의 비용밖에 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여전히 고민이다. 비영리단체와 개발자가 서로의 노동을 어떻게 존중하면서 연결될 수 있을지 단체들도 같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 단체 일을 지원하는 것만 아니라 다른 개발자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한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길드나 동아리를 했으니까 커뮤니티 활동이 기본값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좋은 것은 한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께 의사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니까 위험 부담은 줄어들고 상상력은 더 넓어지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소통하는 데 어려움도 있지만 우리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런 비용은 지출하자는 마음이 있었다."
– 책에 보니 "예전에는 회사에 들킬까 두려웠는데 이제 사회와 법을 바꾸려 드는 캠페이너가 됐고 이름을 걸고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구절이 있더라. 이렇게 마음이 달라진 계기는 무엇인가?
"예전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갔다가 해고를 당했다. 인력감축 계획이 있었는데 육아휴직자를 골라 해고한 거다. 그래서 제가 이 사실을 알리고 다녔다. 국회의원실에 투서를 넣었는데 관심을 보였고, 저는 복직을 택하지 않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복직이 됐다. 그렇게 퇴사하고 보니 회사가 생각보다 크게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실명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재미있는 건 제가 글을 쓰든 책을 쓰든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 '조경숙'이 저라고 생각을 안 하더라. 이 업계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잘 안 읽나 보다(웃음). 그래서 더 마음대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 개발자이자 활동가인데 또 만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개발자로 일하면서 삶이 팍팍하다고 여겼다. 이 안에서의 부당한 경험이 쌓이니까 어떻게든 풀어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 6개월 정도 있었는데 '내가 세상과 이렇게 단절될 수 있다니' 싶어서 놀랐다. 자아를 잃어간다는 공포감이 커서 아이 잘 때 잠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글을 썼다. 공포와 불안 때문이니까 긍정적인 전환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해보니 글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좋더라. 만화평론, 기술평론 등 무슨 글이든 꾸준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년에 스스로에게 하는 덕담이 '지나치게 공부하지 말자'였는데 잘 지켜졌나.
"작년까지는 절정기였다. 밤새워 공부하고 프로젝트하고. 그런데 올해 초에 갑상선 암을 진단받고 4월에 수술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필요 없는 것을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신기술 스터디에 대한 강박을 덜어낼 수 있었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대학원 가서 디지털 성착취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 최근 네팔에서 한국의 범죄를 모방해 N번방과 비슷한 범죄가 발생했는데 거기선 소녀들에 대한 인신매매로 이어졌다.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성착취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
1) System Intergration(시스템 통합)의 준말로 분산된 정보를 한눈에 보도록 통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이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이 SI업계의 '빅3'로 불린다.
2) 온라인 게임에서 여러 이용자가 형성하는 일종의 집단
3)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서 마감 기한 등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면서 근무를 지속하는 것
4) 특정 문제뿐 아니라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생각과 학습을 하고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기술 또는 이에 대한 연구.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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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도 사람답게… 길드를 만드는 오지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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