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정부의 공공분양주택 사전청약 공급 계획
국토교통부
많은 이가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분양주택을 많이 짓겠다고 하는데, '주거선택권'을 제공한다며 몇 년 동안은 집을 빌려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하니 왠지 이상하다. 내가 입주할 집이 행여나 '순살 아파트'이진 않을지 살아볼 겸, 지금 당장 분양금을 다 마련하기는 어려우니 몇 년 동안은 목돈도 모을 겸 분양받기 전에 한동안 빌려 쓰는 것 자체는 괜찮을 듯도 하다.
정책 자체가 이상하다기보다는 임차와 분양이라는 다소 모순된 내용을 하나의 정책으로 합쳐 놓으니 보리차인 줄 알았는데 맥주였던 액체처럼, 임대주택 혹은 분양주택인 줄 알았는데 분양주택이나 임대주택인 다소 특이한 집이 되었다.
사실 이처럼 임차해 살다가 분양받는 집을 정책적으로 공급한 건 2022년 발표된 뉴:홈 선택형이나 내 집 마련 민간임대가 처음은 아니다. 이외에도 공공임대의 하나인 분양전환공공임대가 있다. 5년 공공임대니 10년 공공임대니 하며 5년에서 10년 동안은 저렴하게 공공임대에서 살다가 분양받을 수 있는 집이다.
기업형 임대(뉴스테이)나 공공지원민간임대 같은 민간임대 역시 민간사업자가 8~10년 동안 임대하다가 분양할 수 있는 집이다. 다만, 분양전환공공임대와 달리 그 집을 임차해 사는 사람에게 분양권이 먼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이를 변경해 기존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권을 보장하는 공공지원민간임대가 2014년 인천시와 2021년 정부에서 '누구나 집'이라는 이름으로 공급됐고, 2022년 정부는 내 집 마련 민간임대라는 이름으로 이를 공급한다고 한다.
왜 바로 분양하지 않고 임대하다가 분양하는 걸까?
시리즈물같이 다양한 임대 후 분양주택 사례를 보며 분양주택이면 분양주택이지, 왜 임대를 하다가 분양하는 주택을 공급하는지 궁금해진다. 한두 차례 시도로 그치지 않고 여러 이름으로 반복해서 공급되는 걸 보면 집을 짓는 공급자와 그 집에 살길 원하는 수요자, 그리고 정책결정자 사이에 어떤 균형이 이뤄졌을 성싶다.
우리가 우리 사회에 집을 어떻게 공급할지 결정하는 정책결정자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개중에는 4년마다 이사하는 설움, 청약가점에 밀려 당첨되지 못한 설움 등으로 분양주택을 많이 공급하고 청약 자격도 획기적으로 바꾸고 싶은 이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삶의 여러 문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우리 사회 전체의 주거 문제를 바라보면 '분양주택만 공급해도 괜찮을까?' 고민되기도 한다.
202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57.3%는 자기가 소유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42.7%는 전세, 월세, 사글세 등으로 집을 빌려 살고 있다. 이 40여% 중에는 분양주택을 통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양가를 감당할 수 없는 등의 이유로 저렴하게 오래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도 여전히 많다는 생각을 지우기 쉽지 않다.
때문에 정책적으로는 일정 물량의 집을 임대주택으로 꾸준히 공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게 집을 짓는 공급자에게는 또 고민이다. 분양주택과 달리 임대주택은 거액의 분양가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공급자는 집을 다 지은 후 토지비, 건설비, 대출금 등을 빨리 회수해 은행이나 채권자에게 갚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임대 후 분양주택에서 공급자는 일정 기간 임대한 후 집을 분양하며 해소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 집 마련 민간임대를 공급해 임대하는 민간사업자는 최대 10년 동안만 집을 임대 운영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이를 임차인 등에게 매각해 주택 공급 및 운영에 투입한 사업비를 메운다. 임대 후 분양주택은 이 지점에서 무주택자의 주택 소유 수요, 일정 부분 임대주택 공급이 필요한 정책결정자의 동기, 주택공급자의 임대사업비 조기 회수 동기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임대주택을 매각해 주택공급자의 공급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방식은 아니다. 공공임대를 비롯한 공적 임대주택(사회주택) 재고율이 우리나라(8%, 2020년 기준 공공임대 재고율)보다 높다고 알려진 네덜란드(34.1%, 2020년 기준)나 영국(16.7%, 2019년 기준)에서도 1980~1990년대에 지방정부나 비영리 민간사업자가 소유한 공적 임대주택을 매각한 사례가 있다.
심지어 이들 나라에서는 공적 임대주택 사업자가 그 집과 관련된 파생상품을 만들어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는 임대주택을 어느 시점에 매각해 주택의 공급 및 운영 비용을 충당하는 건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도 하겠다.
'모든' 임차인이 임대 후 분양주택으로 내 집을 소유할 수 있을까?
하지만 수요자에게 임대 후 분양주택은 언제는 임대주택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분양주택이라고 하는 게 여전히 보리차인지 맥주인지 알 수 없는 찜찜함이 있다. 임대 후 분양주택을 빌려 쓰는 사람이 정말 임대 기간이 종료된 후 그 집을 살 수 있을지, 임대 후 분양주택이 다른 임대주택이나 분양주택 공급에 영향을 주진 않는지를 통해 이 찜찜함의 실체를 살펴보자.
2022년 이후 주택시장이 전체적으로 침체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최근인 2023년 상반기에 입주자 모집 공고가 있었던 인천의 한 59㎡(17.8평) 공공지원민간임대 아파트를 대상으로 계산해보았다.
공고일 포함 이전 6개월 동안 이 아파트가 위치한 동에 있는 아파트의 주택매매가격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해당 위치 자치구 내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 평균을 적용하면 10년 후 이 아파트의 가격은 4억 3000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여기에 LTV(주택담보대출비율) 70% 규제가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3억 원 정도를 은행 대출로 마련할 수 있다.
2018~2022년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취급액 이자율 평균(3.16%, 이 역시 최근 이자율 동향을 고려하면 낮게 가정했다는 한계가 있다)을 적용해 40년 동안 원리금균등상환을 한다고 하면 매달 102만 원을 은행에 갚아야 한다.
자녀 1명이 있는 신혼부부라고 할 때 이들은 806만 원보다 낮은 월 소득(2022년 도시근로자 3인 가구 월평균 소득 120% 이하)을 벌 때만 이 임대 후 분양주택의 특별공급 물량을 임차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2020년 1분기부터 2023년 1분기까지 매년 소득 변동률 평균(4.35%)을 적용하면 10년 후 이들의 소득은 1235만 원으로 기대된다. 이 정도 소득의 3인 가구가 10년 동안 공공지원민간임대를 임차하다 분양받으면 40년 동안 소득의 8.3%를 은행에 갚아야 하는 거다.
주택시장이 많이 침체된 것이 반영된 탓인지 주택 소유 수요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임대 후 분양주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월 원리금 부담이다. 임대 후 분양주택 중에는 처음 집을 빌릴 때 소득 제한이 없는 유형도 있고, 또 소득 제한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이 평균보다 더 많이 오를 수 있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대출 원리금 부담은 더 낮게 평가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주택 소유 수요자 수만큼이나 다양할 여러 경제적 여건을 간과하고 있다.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120%보다 낮은 소득을 버는 사람이 10년 후에 이 집을 분양받을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지다.
2023년 3인 가구의 기준 중위소득은 443만 원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이 매년 4.35%씩 올라도 10년 후 이들은 40년 동안 소득의 15.0%를 은행에 갚아야 해당 공공지원민간임대를 살 수 있다.
또, 대출 규제 한도 내에서 은행에 돈을 빌려 부담하는 월 원리금 외에 LTV 등의 한도 밖 분양금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위의 인천 아파트 사례로 생각하면 1억 3000만 원 정도는 저축이나 부모님 지원 등을 활용해 마련해야 하는 거다.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에 적용되는 대출 규제 한도에 차이가 있어 일부 자금을 제2금융권으로부터 마련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이자 부담이 높아진다. 이런 조건에서 소득이 낮고 자산이 적은 가구는 대출 규제 한도 밖 분양금을 마련하기 더 어렵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앞의 예시에서 가정하고 있는 59㎡의 집을 3인 가구가 평생 '거주'할 목적으로 분양받을지다. 이 집을 분양받아 몇 년 후 집값이 오르면(현재의 침체된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반드시 실질 주택가격이 오른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 팔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한다는 등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지만, 애초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특정 지역에 정착할 계획이 있거나 추가 자녀 계획이 있는 등의 가구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가구는 임대 후 분양주택의 전용면적에 따라 분양받고자 할 동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2021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33.9㎡(10.3평)라고 하는데, 이를 고려하면 59㎡의 집을 투자 목적이 배제된 순수한 거주 목적으로만 분양받을 수요는 평생 1~2인 가구로 거주할 가족에게서만 찾을 수 있을 듯하다.
2022~2023년 기준으로 임대 후 분양주택이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 주택인 경우가 5년 공공임대는 75.9%, 10년 공공임대는 40.0%, 기업형 임대 및 공공지원민간임대는 79.6%라고 한다. 이들 집은 3인 이상 가구 입장에서는 거주대상으로서 분양받기 애매하고 1~2인 가구 입장에서는 3인 가구보다 소득이 낮아 분양받기에 값비쌀 우려가 있다.
임대 후 분양주택 공급이 임대주택/분양주택 공급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임대 후 분양주택이 임대주택인 듯 분양주택인 듯 애매한 정체를 이용해 둘 중 한 주택의 공급에 영향을 주고 있진 않을지도 문제 된다. 예를 들어 임대주택 공급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공급하는 주택 상당수가 임대 후 분양주택이라면 오래 거주할 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공했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분양주택 공급을 하겠다고 하면서 임대 후 분양주택을 중심으로 주택을 공급하면 분양주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충분한 분양주택을 제공했다고 하기 어렵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공급된 임대주택을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임대 후 분양주택의 하나인 분양전환공공임대(10년 공공임대 등)는 2012년 이후 그 공급이 줄어들며 다른 공공임대에 비해 현격히 적게 공급되었다. 이후 정부가 추진하는 뉴:홈 선택형을 통해 연간 2만 세대로 공급이 늘어날 예정이지만, 비슷한 공급량을 보인 2018년(2만 6000세대)을 보면 이로 인해 다른 유형의 공공임대 공급량이 줄어들지는 않긴 했었다.
또 다른 임대 후 분양주택인 기업형 임대 공급량은 2017~2019년 동안 급격하게 늘어나 전체 임대주택(꺾은 선 그래프) 공급을 늘렸다. 그렇다고 기업형 임대 공급이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줄였다고 평가하긴 어려울 듯하다. 이 시기에는 공공임대의 한 유형인 전세임대가 많이 공급됐고, 대표적인 장기공공임대인 국민임대 공급도 2014~2016년에 비해 늘어났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우리 정부는 임대 후 분양주택 공급을 통해 다른 장기임대주택 공급 자체를 줄이진 않은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임대 후 분양주택 공급량 증가만큼이나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지원이 충분했기 때문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공급량 수치 이면에 있는 공공지원 수치 변화를 살펴보고 앞으로도 이제까지의 임대주택 유형별 공급 변화와 유사한 경향이 나타날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