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와 시민들이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야산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현장 인근에서 추모 집회를 열고 국가의 책임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유성호
여성들은 이번 사건이 개인적인 비극이나 불운이 아닌 사회적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행진에 참여한 유지민(28·여)씨는 "최근 여성혐오 범죄가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정책을 바꾸려는 시도는커녕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여성안심귀갓길을 없애는 게 아니라 여성 안전에 힘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진성선(30·여)씨는 "정부가 성차별·성폭력을 방치하면서 여성들이 죽음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며 "장애여성을 비롯한 모든 여성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차별에 노출되는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동안 사회에서 불거져 나온 '페미사이드(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소희(43·여)씨는 "강남역 살인 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건, 신당역 스토킹 사건처럼 또 한 명의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앞서 숱하게 반복된 사건들이 젠더폭력 구조에 기반한 문제임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참여했다. 서인호(61·남)씨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 제가 늘 산책하는 길이라 깜짝 놀랐다"며 "국가는 사람이 죽었는데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는다. 여가부 폐지를 말할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들이 행진하는 거리에는 '모두가 괜찮은 세상 성평등이 만든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성차별 성폭력 당장 박살 내자", "지금 당장 성평등"이라고 외치며 신림역까지 3km에 이르는 거리를 약 2시간 동안 걸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공동사무처장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던 여성의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대답 없는 물음들이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살해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고인을 기억하며 이러한 안타까운 일을 막을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