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훈씨
한영훈
- 조모 구분숙은 조부 한봉룡이 대한민국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을 당시인 1950년 7월 25세였는데 그때 상황에 대해 부친에게 직접 말씀 하신 적이 있나?
"부친은 조부가 돌아가신 다음해인 1951년 출생하셨다. 조모는 부친이 3세 때인 1954년 친정으로 가셨다. 그래서 부친은 증조모와 같이 살다 9살 때인 지난 1960년 증조모께 부친 한봉룡의 학살 사건에 대해 처음 들었다. 그 후 부친은 20세 때인 지난 1971년 조모와 재회하여 조부의 학살 소식을 직접 듣게 되었다."
- 조부모의 자녀 등 가족관계를 소개하면?
"조부모는 1945년 결혼하시고 슬하에 아들 셋을 두셨다. 부친의 큰형과 작은형은 어릴 때 질병으로 사망하셔서 부친은 한순간에 독자가 되어 버리셨다."
- 조부가 학살될 당시 부친 한종식은 유복자였는데 부친으로부터 조부 학살 사건에 대해들은 내용 중 특별히 가슴 아팠던 점은?
"조부가 없이 태어난 부친은 어릴 적 고생만 하셨다고 하셨다. 또 3세 때인 지난 1954년 조모가 아예 친정으로 가셔서 부친은 증조모와 함께 살았지만 여러모로 말 못할 고생이 많으셨다고 하셨다."
- 졸지에 남편과 아버지를 국가폭력으로 잃어버린 조모와 부친은 그 후 어떤 삶을 사셨는지?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나도 30세가 넘은 3년 전인 지난 2020년 그 소식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 '왜 이렇게 늦게 알려주셨냐?'고 하니까 본인 고생하신 것도 알리기 마음 아팠는데 그 당시 연좌제의 분위기로 인해 우리 집이 빨갱이 집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말씀을 안 하셨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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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기 진실위는 경주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경주지역에서 발생한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관할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을 불법 사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범죄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하여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위 진실위 진실규명 후에 국가를 상대로 보상신청을 한 것으로 아는데 그 후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진실위 진실규명 결정을 받고 부친은 지난 2011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셨고 그래서 지난 2014년 3000만 원의 보상을 받으셨다. 하지만 지난 2013년 사망하신 조모와 부친의 형제 두 분의 위자료 청구권에 대한 상속권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지난 2016년 부친은 국가에 다시 소송을 하셨다. 1심은 부친의 피해를 인정하여 국가가 1억여 만 원과 지연이자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대법원은 공소시효가 두 달이 지났다고 판결하여 부친은 결국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셨다."
- 국가폭력으로 인한 조부의 학살 사건에 대해 결국 법원에서는 (국가폭력으로 인한 억울한 조부의 죽음을) 인정은 하나 공소시효 만료로 보상은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인데 이런 판결을 받고 어떤 마음이 들었나?
"부친은 현재 73세 이신데도 평생 억울하게 살았고 억울한 마음이 크다고 하셨다. 한 가문이 멸문지화 당하였는데 두 달 차이라는 공소시효로 인해 보상을 못 받게 된 점이 더욱 아쉽다고 하셨다. 몇 달 전 내가 나서서 변호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공소시효 문제로 인해 승소할 가능성이 적다고 하여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포기하게 되었다."
"국가폭력사건은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보상해야"
- 부친 한종식은 한평생 조부 한봉룡을 그리워하며 시대를 원망하셨을 것 같은데 부친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옆에서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부친은 증조모와 경주에서 9세까지 지내다 부산으로 가셔서 육아원에서 지내시면서 해운대초등학교를 졸업하셨다. 이후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대구 옆 경산 메노나이터 중-고등학교(전쟁고아들 교육해주는 곳)를 졸업하셨다. 20세에 군대 36사단 수송병으로 21개월 복역 중 사회고아라고 판단했는지 의가사 제대하셨다. 제대 후 삼척탄광생활, 울릉도 오징어잡이 등등 고생을 많이 하셨다."
- 국가폭력으로 인한 억울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게 국가, 특별히 법원이 어떤 대우를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국가폭력사건은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증거가 명확히 있는 사건이기에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가폭력 피해자 유족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에게 과거사정리와 관련해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반인륜적범죄나 국가폭력은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다시 법 제정을 해서라도 명확한 보상과 진심 어린 국가의 사과를 바란다. 국가폭력으로 인해 불우하고 힘들게 보내야 했던 부친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도 누이도 그냥 일찍이 조부께서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지내왔는데 뒤늦게 이런 중대한 사건의 피해자 유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 어린 딸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지 국가란 정말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더 이상은 없게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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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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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학살당한 나의 조부, 공소시효 만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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