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를 작사.작곡한 가수 김현성.
리일천
노래는 어떤 생명력을 지녔을까. 한 과학자는 '지구상에 이미 잠입(?)하여 함께 사는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혹시 노래가 아닐까, (그 노래는) 새롭고 놀라운 불멸의 삶을 사는가 하면 가물가물해지고 잊히고 마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오랜 생명력을 가진 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 40주년을 맞는다. 자두꽃, 호박꽃 핀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 올라탄 작곡가 겸 가수 김현성은 파주와 서울을 오가며 가지가지 노래 타래를 만들어왔다. 가슴팍 꼭 안아주는 사랑 노래에서부터 주먹을 부르르 쥐게 만들었던 거리의 노래까지, 그의 노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노래.
남녘의 대한민국 국군 훈련병뿐만 아니라 북녘의 인민군 훈련병도 이 노래를 부르며 입대하곤 했다는, 긴가민가 전설적인 이야기도 들려온다. 아득히 멀리 휘어진 길을 따라 훈련소로 가는 젊은이들을 배웅하던 이 노래는, 전쟁 없고 헤어짐이 없는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바라는 '반전 노래'다.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부모님, 자매형제, 간절한 그리움이 담긴, 목젖이 한없이 떨리는 노래다.
그 '반전 노래'를 낳은 김현성과의 특별한 대담을 진행했다. 월드뮤직 스테디셀러 '여행자의 노래' 선곡자이자 대학 등에서 대중음악을 강의하는 필자(임의진)의 담양 작업실, 노래의 주인공 김현성 가수가 자주 다니는 서울의 후미진 골목의 선술집에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조근조근 나눈 말을 포대기에 싸고 가마니에 담아 그러모은 이 줄거리는 한 생애가 음표를 딛고 살아간 이야기, 한 노래가 세월을 살며 남긴 소중한 기억이 되고도 남는다.
별을 헤듯 요새는 돈을 세는 세상이지만 노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낯선 일인지 모른다. 장대에 건 안테나를 돌려 화면을 조정하던 때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 다같이 머리를 빡빡 민 이등병 친구를 가진 인연이 되어보았을 것이다. 오늘 이 대담이 안간힘을 쓰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허밍(humming)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기적 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 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밥 딜런과 '이등병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