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아라카와 강 위 철교. 100년 전 이곳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뤄 떠내려갔다고 한다.
김현성
2023년 6월 2일 오후 6시, OZ1035편 아시아나 비행기는 도쿄 하네다공항에 쉽게 내리지 못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에는 날씨가 맑았는데, 비행기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기내식 식판이 앞으로 날았다. 다행히 모두 싹 먹었기에 망정이지. 공항을 눈앞에 두고 비행기는 20분을 더 선회한 뒤에야 안전 착륙.
김태영 다큐멘터리 감독과 촬영감독 김한성 그리고 나, 셋은 드디어 하네다공항 문을 나왔다. 코로나 시국에 3년간 해외 어느 곳도 가지 못했는데 모처럼 일본 도쿄에 온 것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한 팀이다, 나는 그 작품의 주제가를 쓰려고 현장을 동행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 지하에 지옥 같은 모습이 묻혀 있으리라고는...
100년 전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죽은 현장을 다시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얼핏 보면 그저 아름다운 강물과 숲이 보일 뿐이다. 감히 그 아름다운 풍경의 지하에 지옥 같은 모습이 묻혀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도쿄의 곳곳은 수로와 그 주변 가로수로 운치 있게 보인다. 서울보다 위도가 아래여서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상록수와 꽃들이 잘 가꿔져 있다.
나카무라숲. 마른 굴비를 매달아 놓듯이 조선인들을 매달고 불 지르고 묻었다는 그곳을 갔다. 숲의 흔적만 있고 이미 건물이 서 있다. 많은 시신이 떠내려갔다는 오래된 철교 아래로 강물이 흘러가며 빗방울이 수많은 눈물 물방울을 만들며 흘러간다.
연출을 맡은 김태영 감독의 손에 쥔 지팡이가 촬영감독의 뒤를 위태롭게 따라갔다. 이미 하토야마 전 총리를 비롯해 일본의 여러 증언자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위해 수차례 현장을 찾은 그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에서 조선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뤄 떠내려갔다는 게 상상이 돼?"
김태영 감독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들은 일본 사람들인데, 봉선화라는 모임의 회원들이야. 조선인 학살 사건을 추모하며 사료를 찾고 알리는 일을 스스로 해온 분들이야. 도쿄에서 멀리 두 시간이나 떨어진 나가노시에서 오는 사람도 있어."
참변이 있었던 도쿄 아라카와 강둑 너머에 일본시민모임 '봉선화'의 허름한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옆 화단에는 작은 추모비가 화단에 조성되어 있었다. 몇 그루의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올해도 봉선화 씨를 뿌렸다고 한다. 사무실 안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 자료와 서적이 꽂혀 있다. 매년 때마다 이어온 추모제와 행사 포스터가 내 눈에 들어왔다(관련기사:
한국인 추도비 옆에서 7년간 먹고 잔 일본인 https://omn.kr/23wnm).
'간토를 떠나 혼이라도 날아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