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화 보살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전갑남
계곡 사이 고풍스러운 다리를 건너자 조그마한 사당(祠堂)이 보인다. 사당 앞에는 공덕비 하나가 세워져 있다. 시주 길상화 보살인 김영한의 공덕비이다.
길상화는 김영한의 법명으로 오늘의 길상사를 있게 인물이다. 김영한과 길상사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사실 길상사는 처음부터 절이 있던 터가 아니고, 과거 김영한이 운영하던 대원각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있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보통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7000여 평에 40여 동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기부하였다.
처음 그녀가 대원각을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하자 법정은 "나는 주지(스님)를 해본 적도 없고, 큰일을 할 인물도 못 된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한 사람은 10년을 부탁하고, 한 사람은 10년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진심이 통했을까? 법정 스님은 주지를 맡지 않고,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소속 절)가 되어 길상사는 1997년 시작됐다. 대원각은 당시 1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법정의 무소유 철학과 이를 실천한 김영한의 통 큰 기부는 세간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영한은 '시인의 시인'이라고 하는 백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루지 못한 사랑은 백석이 남긴 사랑의 시로도 태어나 공덕비 옆에 쓰여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백석의 시구 일부를 옮겨 본다.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김영한이 그 큰 돈을 기부했을 때 "아깝지 않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었으나, 그녀가 한 말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했다. 보살 김영한은 당시 "1000억 원이라고 하는 돈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답했다 한다.
길상사에 깃든 법정 스님의 숨결
조금 비탈진 곳에 진영각이 나타난다. 진영각은 법정 스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진영각 내부에 스님의 영정과 스님이 남긴 수많은 저서와 평소 쓰던 검소하고 소박한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누더기처럼 해진 법복은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