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1층, 주시경 선생이 1910년에 지은 ‘한나라말’ 앞에 선 허경무 서예가(2022년).
김슬옹
먼저 한국 서예계가 왜 한글 서예를 홀대하는지를 들어봤다(허 이사장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글 서예 이론으로 최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고 2022년 6종 한글서예 교본을 펴내기도 했다).
- 서예계가 한자, 한문 서예 위주로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서예는 아직도 대부분 도제식 교육으로 이루어지거든요. 선생의 대를 이어 한문 서예 위주로 공부해 왔으니 또 제자들이 그대로 배우게 되는 거죠. 서예 용어는 물론 용필법, 운필법 등 이게 다 선생님 지도대로 따라가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뭐랄까 시대를 앞서가거나 변혁시키기 힘든 한계가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예술성의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고 선생님이 하던 것이니까 그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요."
- 지금 현재 한글 서예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한글 서예의 필요성과 인식은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아직도 한자 중심 서예를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왜냐면 여러 한글 서체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죠. 서예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뜻이 있어도 잘할 수가 없어요. 체계적인 한글 서예 지도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적으니 대를 이어 이미 해 오던 한문 서예에서 못 벗어납니다.
이런 것이 안타까워 우리 서단에서 한글 서예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자 여러 시도를 해봤으나, 도제식 교육으로 이어온 기예와 시점이 모두 닮아가는 특성으로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변화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집니다. 한글서예의 발전적 변화와 예술적 확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질적 노력이 절실한데, 오늘날의 한문 중심의 공모전 형태로서는 이루기 어렵고, 한문 서예가들이 주도하는 서단이나 공모전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 한글 서예를 6가지로 분류한 맥락은 무엇입니까?
"우리 한글 서체를 예술성 있게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학문적으로 분류한 게 7가지 서체인데 언해본체 진흘림은 고어가 많고 획의 축약이 심하여 체계화하여 교본으로 필사하기가 쉽지 않아 잠시 미루고 우선 여섯 가지를 내었습니다. 곧 (훈민정음)해례본체, (훈민정음)언해본체 정자, (훈민정음)언해본체 흘림, 궁체 정자, 궁체 흘림, 궁체 진흘림 등입니다.
언해본체(진흘림)은 미루었는데, 예컨대 추사 선생의 편지글의 경우 글자가 3개 4개 연달아 연결되기도 하고, 획을 많이 축약하여 꼬불꼬불한 'ㄹ'을 세로막대처럼 내려그어 마치 암호 같아서 글씨 판독이 가능한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이라, 요즘의 붓으로 써서 기준으로 제시할 교본으로 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