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파스트의 성 패트릭 가톨릭 성당
Widerstand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16년에는 '부활절 봉기'를 통해 영국에 무력으로 맞서기도 했죠. 물론 부활절 봉기는 영국의 강력한 진압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민간인을 포함해 무차별로 아일랜드인 수백 명을 학살한 영국군은 아일랜드인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겼죠.
결국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루어진 선거에서, 아일랜드의 시민들은 아일랜드 독립파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아일랜드인의 지지를 확인한 독립 세력은 영국 의회에 출석을 거부하고, 아일랜드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영국은 다시 한 번 무력으로 맞섰죠. 그렇게 '아일랜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년 간 이어진 전쟁 끝에 영국은 아일랜드를 자치령으로 인정하는 조약을 맺기에 이릅니다.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국가를 만들고, 폭넓은 자치권을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상의 독립 인정으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조약은 아일랜드에 더 큰 갈등을 불러왔습니다.
아일랜드 자유국은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외교권과 군사권은 명목상이나마 영국에게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아일랜드 섬에서도 북쪽 6개 주는 독립하지 않고 영국에 남게 된다는 사실이었죠. 이것이 북아일랜드의 탄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