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을 꽃으로 에워싼 백선엽의 묘. 주변엔 존경한다는 글귀를 적은 팻말이 즐비하다.
서부원
특히 역사 교사로서, 분노가 치밀다가 이내 밀려오는 허탈감에 무기력에 빠져들게 하는 사안이 있다. 노골적으로 백선엽 띄우기에 나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언행에 처음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삼척동자는 다 아는 명백한 역사 왜곡일뿐더러, 정부가 나서서 온 국민의 '역린'인 친일파 문제를 건드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백선엽 띄우기는 '이승만 우상화'에 이은 후속 작업이었다.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시동을 걸었다 좌초한 '건국절 논쟁'을 반면교사 삼아 재추진하려는 치밀한 전략의 소산이다. '건국절'을 지정함으로써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폄훼하고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일괄 세탁하려는 의도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살아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추진하는 과정이다. '건국절'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밀어붙여 의도를 들켜버린 '연역적' 방식 대신, 극우적인 여론에 힘을 실으면서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나하나 뒤집는 '귀납적' 방식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기, 승, 전, 건국절'은 현 기득권 세력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백선엽은 본인 스스로 일제의 주구 노릇을 했다고 자백했을뿐더러, 그는 역사학계에서 공히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명토 박은 인물이다. 백선엽은 결코 친일파가 아니라고 우기는 박 장관의 주장은 우리 사회 보편적 상식에 반한다. 게다가 박 장관은 자신의 주장에 애먼 직까지 걸었다.
지난 2020년 백수를 누리고 사망한 백선엽은 국립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건 역사의 정의를 거스르는 일이라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6.25 전쟁의 영웅으로서 합당한 예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해방 직후 미소 냉전과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 6.25 전쟁은 친일파들에게 그들의 과오를 단숨에 씻어내는 더없는 기회가 됐다. 1948년 제주 4.3과 여순 사건을 거치면서 "친일파보다 빨갱이가 더 나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됐고, 6.25 전쟁은 반공이 항일을 압도하는 사회로 가는 '화룡점정'이었다.
그렇게 '빨갱이'를 때려잡은 '친일파'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애국자가 됐다. 백선엽을 비롯해 적지 않은 친일파가 6.25 전쟁의 공적 등을 인정받아 서울과 대전의 국립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그것도 가장 높은 위치의 장군 묘역에서 발아래 애국지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국립묘지에서도 반공이 항일보다 우선인 셈이다.
'양시론적' 역사 공간이 된 국립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