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픽사베이
어느 날 뜬금없이, 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친구의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OO 엄마, 혹시 개명했어요?"
"네?"
"아니, 톡을 보는데 이름이 너무 예뻐서요. 이름이 원래 그랬어요?"
"네."
"어머나 개명한 줄 알았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 오해 가끔 받아요."
내 이름은 '가은'이다. 84년생 김지영보다 훨씬 일찍 태어났지만 어찌하다 보니 요즘 아이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가은'이란 이름은 생각보다 흔하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이름으로도 가끔 등장하고, 심지어 딸아이 친구 중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아이가 가끔 "가은이가 어쩌고저쩌고" 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한다.
요즘 세상에 개명이 무슨 대수랴 싶지만, 개명 의혹도 간혹 받곤 했다. 사실 내 이름의 출저는 그저 극성맞은 할머니가 돈 주고 지어온 이름이다.
뜬금없는 개명 의혹 말고도 겪는 에피소드는 또 있다. 아이와 같이 감기에 걸려 아이와 내 이름을 접수대에 적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천연덕스럽게 부른다.
"가은이 들어오세요."
"아~ 제가 가은인데요."
"어머, 죄송합니다. 아이 이름인 줄 알았어요."
"괜찮아요."
이렇게 시대와 맞지 않는(?) 다소 튀는 특이한 이름으로 살고 있다보니,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만 예쁜' OO이라니
특이한 이름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면 남들이 대개 예쁘다고 하는 이름, 그 이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외모를 꼽을 수 있겠다. 사실 본인에게 이름이란 모두가 그렇듯이 특별한 느낌은 아닐 것이다. 매일 들으니 익숙하고 그래서인지 본인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객관적으로 인지되지도 않고, 아무 느낌이 없다.
그러나 타인에게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이름에서 연상되는 외모나 이미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심정적으로 느껴지는 내 이름과 외모는 천지차이라고나 할까? 이름이 평범한 외모를 더 못생기게 느껴지는 만드는 것만 같았다. 이름이 예뻐서 얼굴이 더 못생기게 느껴지는 후광효과라고나 할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전화 통화로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괜한 호기심을 심어주고는 대면하고서 환상을 깨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본의 아니게 환상을 깬 죄책감이랄까 이름만큼 아름답지 못한 얼굴이 원망스러울 때도 종종 있었다.
"야~ 넌 이름만 예쁘다."
나는 이런 말도 꽤나 많이 들었다. 쿨한 척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나를 많이도 찔러댔다. 자신감을 뚝뚝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이름을 원망하기 일쑤였다.
예쁜 이름을 물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기보다는, 늘 "대체 왜 이렇게 튀는 이름을 지어서"라는 원망이 절로 나오곤 했다. 나도 모르게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았었다.
나처럼 이름의 무게에 짓눌렸던 화가
이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았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도 마찬가지였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아니 카라바조는 대 화가 미켈란젤로가 사망한 지 7년째 되던 해인,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버거웠던지 아버지 고향의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로 이름을 바꾼다(여기서 살짝 만화가 기안84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도 그가 자취하던 수원의 기안동의 이름을 따서 기안84라는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안다).
이름의 무게감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유명한 화가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카라바조의 인생도 굴곡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