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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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개개인이 나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늙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900만 명을 넘어서 전체 인구 중 17.5%를 차지하게 됐다. 그리고 2025년엔 그 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살다 죽어갈지가 많은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한편에서는 '장수마을'을 찾아서 장수의 비결을 묻고, '전국장수자랑'이란 TV프로그램도 생겨 어르신들을 찾아가 명아주 지팡이를 선물하는 등 '늙음'을 축복한다. 그러나 세금 낼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세금 받을 노인들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해 듣다 보면, 노인층을 어찌 하지 못 해 안절부절하는 우리 사화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않아'라는 노인들의 한숨 섞인 하소연이 그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에 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도성장'이라는 경제적 성과를 이뤄낸 이들이 이제는 '노인'이라는 명찰을 달게 됐다. 젊은 시절, 저임금과 힘든 노동을 감당하며 열심히 일한 그들이 이제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매해 3000명 넘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 프랑스의 10배, 미국의 2배가 되는 노인 빈곤율을 자랑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실낱같은 희망 또는 절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는 노인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방문 진료'는 소중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주 조금씩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장애인, 노인 등 약자들을 위한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문 진료 시범사업도 그런 제도 중 하나다. 2019년 12월부터 3년 단위로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현재 3년 연장된 상태다. 필요할 때 전화해도 연결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참여병원도 적고 진료를 받은 환자도 소수이지만, 해마다 참여환자가 늘고 있다. 방문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제도가 시범사업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제도로 정착된다면, 내 집을 찾는 주치의가 죽음의 순간까지 나를 돌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양창모씨는 '왕진주체가 민간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곧 돈인 의료시장에 돈 안 되는 왕진을 맡기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마을 보건소마다 어르신들의 상황을 잘 아는 왕진 의사가 있다면, 마음이 든든하겠다.
그리고 주민들 스스로가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역의 의료와 돌봄을 책임지는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도 방문의료와 간호를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