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군가를 소개하는 <독립신문> 1898년 11월 1일자 기사.
독립신문
더군다나 <충성가> 선율은 도저히 대한제국 시절에 불렸다고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미'로 시작해서 '라'로 끝나는 '라-시-도-미' 중심이고, '미'에서 '라'로 올라가거나 '라'에서 '미'로 내려올 때 '파'와 '솔'이 잠시 등장하는 선율이다. 1930~40년대 일본 유행가나 군가에서 많이 사용된 독특한 '라-시-도-미-파' 단조 음계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으므로, <충성가> 곡조는 아무리 올려 잡아도 1920년대 이전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작곡가 금수현이 해방 직후에 만든 음악극 <을불의 고생> 중 한 곡이 <충성가>의 원작이라고도 한다. 을불이 고구려 미천왕의 이름이고, 훈령에서 언급한 <충성가> 가사에도 고구려가 보이므로, 개연성은 나름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을불의 고생> 대본이나 악보 등 관련 자료가 공개된 바 없으므로, 이 또한 아직은 근거 없는 주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대한제국에서 한 술 더 떠, <충성가>를 조선 후기 12가사와 연결시키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충성가>의 또 다른 제목 <양양가>와 12가사 중 하나인 <양양가(襄陽歌)>를 혼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일이 따지기도 민망한 특급 가짜 정보이다.
가사 <양양가>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의 시에 가락을 붙여 만들어진 곡이며, 잠깐만 들어 보아도 1950년에 군인들이 불렀을 가능성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충성가>의 '이씨 조선 500년 화화하도다' 대목이 '조국의 앞날은 양양하도다'로도 불렸고 그에 따라 붙여진 또 다른 제목이 <양양가>인데, '양양하도다'의 양양은 襄陽이 아니라 洋洋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구분하지 못해 <충성가>를 가사 <양양가>와 관련 있다고 했으니, '베니스의 상인'이 '고추 장수'로 바뀌었다는 수십 년 전 우스개에 필적할 만한 기발한 발상이다.
그밖에 <충성가>의 긍정적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독립군 군가와 연결시키는 주장도 있으나, 여기에도 아직은 아무런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선에서 정리를 하자면, 1920~40년대에 일본 유행가나 군가 선율을 참고해 단계적으로 다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1940년대 말에 <충성가>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렸고, 1950년 12월에 공식적으로 금지가 되었다는 정도이다. 물론 금수현 자료가 공개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군복무 경험이 있는 이들은 알겠지만, 군대에 국방부 공식 인정 군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충성가>처럼 금지된 노래도 비공식 군가로 존재할 수 있고, 취향에 맞는다면 사사로이 듣거나 부르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노래를 정치적인 의도로 이용하고자 아무 근거도 없는 설들을 만들어내고 유포시킨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역사 왜곡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도 인정한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장관이 나서서 지워 주는 세상이고 보면, 또 모를 일이긴 하다. 한때의 '저속 군가' <충성가>가 만고의 절창으로 공식 추앙을 받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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