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포잔에서 간사이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정류장
권유정
공항 리무진은 실물 티켓은 왕복으로 구매를 해왔기 때문에 따로 발권을 하지 않아도 됐다.
다만 이번에는 캐리어마다 번호표를 부착하고 꼬리표를 떼어줬는데, 첫날 탑승권을 잃어버린 경험을 떠올리며 일괄 걷어서 보관했더니 내려서 짐을 찾을 때 일일이 번호를 대조해서 주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다른 탑승객들이 다 떠나가고 우리 일행과 짐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번호를 확인하지 않고는 짐을 내주지 않던 완고한 직원들 덕분에 순서 없이 섞인 스물네 개의 짐과 번호를 맞추느라 한참이 걸렸다. 그냥 각자에게 나눠줄 걸 그랬다 싶다가도, 이번에 표를 잃어버렸다간 짐을 못 찾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으로 오는 틈새에 한국 검역절차인 Q코드도 입력했다. 세관신고서는 5월 1일부터 규정이 변경되어 신고할 물품이 없으면 작성하지 않아도 됐다. 우리에겐 너무나 다행인 일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러 번 서류를 작성해 본 아이들에게 Q코드는 그리 어렵지 않은 절차였다. 링크를 보내주자 입력부터 다운로드까지 착착 해냈다. 혼자 입력이 어려운 아이들은 대신 입력하고 QR코드 사진을 저장하게 했다.
"교수님, 해외여행은 해야 할 게 많네요."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기도 했지만, 그건 어렵다는 투정보다도 그럼에도 자신이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의 발현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이유
여행은 끝의 끝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 아이는 인천공항에서 귀국 편에 맞추어 예매한 공항버스 두 대를 몽땅 취소하는 바람에 2시간 반을 기다렸다 다음 버스를 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비행시간이 지연되어 놓칠까 봐 시간대별로 두 대를 예매한 건데, 하나만 취소해야 하는 걸 실수로 모두 취소했고, 당황한 사이 티켓이 모두 매진되어 버린 것이다. 울상이 되어 나타난 아이와 다시 티켓을 끊으며 다독였다.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어. 그다음 표를 끊으면 돼. 그리고 오늘의 경험을 잘 기억했다가 같은 실수를 또 하지 않도록 더 조심하면 되는 거야."
순탄하기만 한 여행도, 순탄하기만 한 인생도 없다. 문제에 부딪혀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해결 못할 것이 두려워 문제를 피하면 성장하지 못한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여행은 완벽하지 않았으나 충분히 멋지고 성공적이었다.
"어때? 다음에는 너희들끼리 올 수 있을 것 같아?"
여행을 마치며 지도도, 번역기도, 배운 대로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던 아이들에게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이내 자신 있게 말했다.
"숙소만 구하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여행 전에는 반신반의하며 그저 희망으로만 남겨두었던 바람인데, 실제 여행을 하고 나니 몇몇 아이들은 정말 가능할 것 같았다. 낯선 곳을 혼자 탐색하고 여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오사카를 다시 오는 거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취업하면 월급 모아서 꼭 다시 도전해 봐."
"그럴게요."
시원시원하게 답하는 아이의 눈은 여느 때보다 생기발랄했다. 조기취업을 하고 3년 여를 8시간씩 근무하다 자진퇴사를 하고, 최근 학교에 다시 편입을 한 아이였다. 취업 초기의 의욕을 잃고 직장생활에 지쳐 돌아온 아이에게, 오사카 여행은 다시금 취업에 대한 동기부여가 된 듯했다.
삶이 즐겁고 행복해야 살아갈 의미도, 일을 할 의욕도 생긴다. 긴 인생에서 4박 5일은 지극히 짧은 시간일 테지만, 이 여행의 기억이 아주 오래도록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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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3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자립을 꿈꾸며 열심히 삶을 준비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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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학생들의 첫 해외여행 도전, 거기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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