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공무원들을 향해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질타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사안일한 공무원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관련 기관들 사이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그대로 연출됐다.
희생자의 유족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야당에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국무조정실은 부랴부랴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감찰에 착수했다. 피해가 집중됐던 충북과 경북 경찰청도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관할 지방정부와 관련 기관, 공사 업체 모두가 감찰 및 수사 대상으로, 조만간 징계와 고발이 잇따를 전망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공무원들만 윽박질러서..."
일부 공무원들은 "20세기 매뉴얼로 어떻게 21세기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 관련 지침이 미비해서 발생한 재난이라는 대응이다. '영혼이 없다'거나 '철밥통'이라고 손가락질받지만, 그다지 승진에 뜻을 두지 않은 말단 공무원들조차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다. 다만, 매뉴얼이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뭔가 일을 벌였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처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건 공무원 사회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런 근무 태도를 오롯이 공무원들에게만 따져 묻기도 뭣하다. 참사가 발생하고 언론을 통해 인재라는 비난이 쏟아지면 가장 먼저 문책당하고 처벌받는 게 그들이다.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현장에 나가라고 등 떠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애꿎은 말단 공무원들만 욕보이는 것 같아 황당해요. 대통령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죄다 빈둥거리며 논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군사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자꾸만 공무원들을 윽박질러서 일을 시키려는 것 같아 황당해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웃 주민은 억울하다는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공무원들이 '선제적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완벽한 매뉴얼을 갖출 수 없다면, 그들이 순간순간 자발성을 발휘하도록 북돋아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건 그런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말단 공무원들부터 처벌받게 될 테지만, 그런다고 공직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문화가 개선될 리 만무하다고 단언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단순 명쾌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걸, 말이 아닌 실천으로 증명하는 상급자의 존재, 그것이야말로 모든 공무원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매뉴얼이라고 명토 박았다.
그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행태가 반면교사라고 했다. 무작정 화부터 내는 대통령과 눈치를 살피며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만 열을 올리는 고위공직자 아래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책임 회피에 급급해하는 건 당연지사라는 거다. 염치조차 내팽개친 '법꾸라지'들이 곳곳에 준동하는 것도, 공직 사회에 온갖 편법과 불법이 판치는 것도 종국엔 대통령의 지휘 책임이라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올라와 있는 그 글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