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작가북콘서트 현장, 오른쪽이 설송아 작가
이혁진
평안남도 순천 태생인 설송아 작가(본명은 최설)는 2011년 남한에 입국한 12년 차 북한이탈주민 3세다. 아버지는 1960년대 중국에서 공부하고 북한으로 이주한, 당시로서는 북한에서 드문 지성인이었다. 작가는 고난의 행군 이후 열린 장마당시대는 북한 출신성분제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이 신분을 상승시킬 기회였으며 이들의 모든 활동과 기록을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배경에서 소설 <태양을 훔친 여자>가 탄생했다.
책 제목 <태양을 훔친 여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세대 지도자를 태양으로 신격화하고 이를 세뇌시키는 사회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맞아 3백만 명(추정)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급기야 북한성분제도는 무너지고 있다. '태양을 훔친 여자'는 여성이 국가기능시스템인 성분사회제도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도전적인 여성'을 상징한다.
소설은 주인공 봄순이 1995년부터 자신이 억압당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감옥생활과 딸 미애 등 일부 내용은 간접 체험을 도입했지만 주유소 운영, 아파트 분양 등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
북한 여성의 삶과 애환을 담은 자전적 소설
2011년 남한에 입국한 설 작가는 자신이 아마추어 작가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그에 따르면 작가의 꿈은 고난의 행군이 끝나가던 1998년, 2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북한을 방문했고, 당시 쌀 마대마다 쓰인 대한민국을 보면서 작가는 북한주민으로서 무척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설 작가는 탈북 전인 2004년부터 소설을 써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한 소설은 2015년 발표한 단편소설 <진옥이>에 이어 북한여성의 삶을 보다 깊이 분석해 장편으로 완성한 것이다. 작가는 "봄순은 국가가 생산한 여성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성을 찾아가는 북한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인물"이라 설명했다. 거의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고 말하는 설 작가는, 아버지 영민의 이야기를 할 때는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소설은 북한에서 '돈주'가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돈주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우리말로 이는 돈이 많은 부자, 즉 북한 신흥 부자를 뜻한다. 장마당시대에 돈주의 생리는 정경유착으로도 이어진다. 돈이면 성분도 개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돈의 위력은 권력기관의 남자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주인공 봄순은 당이 발행하는 공채를 무더기로 사들여 표창을 받고, 입지전적으로 당 간부에 올라 성분제도를 타파한다.
소설에서는 '달러'를 숨기는 노하우 또한 소개돼 흥미롭다. 봄순은 달러 뭉치를 김일성 초상화 뒤 금고에 숨겼다. 고기를 먹어도 안 먹은 척해야 하는 북한에서, 신격화된 김일성 초상화 뒤는 돈을 숨길만한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것이다. 돈주들의 경험이지만 이를 두고 "수령이 달러에 밀려났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