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실대는 운곡천춘양면 운곡천이 넘실댄다. 바다가 따로 없다. 거센 물줄기에 휩쓸리면 누구나도 예외가 없겠구나 싶은 파도다.
김은아
여기 안 살아본 나도 이런 비는 처음이다. 운곡천이 넘실대는 것이 금방이라도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집어삼킬 태세다. 재난방송이 흘러나오고 저지대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마을회관으로 이동하신다. 비상상황이라 출근길을 독촉해봤지만, 길이 막혔다. 도로가 완전 침수돼 원천 봉쇄된 것이다.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차에서 내린다. 우리 직원들이다. 모두들 비상이라 상황근무차 나왔다가 발만 동동 구르고 상황대기로 귀가했다.
도로에 있을리 없는 나뭇가지, 나무껍데기, 잎사귀 등이 낯설다.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이곳은 면소재지인데 말이다. 낮은 지대인 마을 안쪽 다리와 도로는 붕괴됐다. 어르신들이 다들 많이 놀라신 눈치다.
"어디를 가려고 옷 입고 나서나?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붙어 있어라. 큰일 난다. 회사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다. 이럴 때 돌아다니면 큰일이다. 알겠나. 어서 집에 들어가라!"
앞집 용이네 어르신들이 다그치듯 말씀하신다. 걱정되고 염려되니 그렇다. 다들 밤새 못 주무셨는지 눈이 충혈돼 있다. 새벽부터 비설거지를 했으니 오죽하랴.
나도 도로가 막혀서 아무데도 움직일 수가 없다. 본가라도 가면 좋으련만 발도 마음도 묶였다. 회사도 걱정이고, 나도, 동료들도 걱정이다. 오늘 밤 또 폭우가 심해지면 근처 어르신 댁으로 피난 갈 준비를 마쳤다. 동료들과는 소식을 공유하고 '무탈하게 살아서 만나자'며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두려움과 긴장이 그리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하천의 물줄기가 바다의 파도 같다. 그 누가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신이 창조한 자연의 순리 앞에 한없이 작아진 인간의 모습을 다시금 마주한다.
산도 무너지고 땅도 무너지는데 작은 화초들은 잘 버티고 있어 보인다. 이 무슨 조화인고 싶다. 크다고 강한 것도 아니고 작다고 약한 것도 아니다. 인생살이 모두 그러한 것인가? 생각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