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인용된 논문.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김영호 교수는 "우화 속의 나그네는 햇볕에 대해서 극히 제한된 방어 수단을 갖고 있을 뿐"이라며 "이와 달리 북한은 상당한 재래식 무기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를 공격과 억지의 수단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한 뒤, 북한이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변화의 길로 나오게 하려면 아래와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가 의도한 대로 북한을 지속적으로 햇볕에 노출시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밑이나 동굴 속에 숨지 못하도록 나무를 자르고 동굴을 차단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햇볕을 계속 쬐지 않고 나무 그늘이나 동굴로 피하게 되면 햇볕정책이 무용해지므로, 나무를 자르고 동굴 입구를 차단하는 일부터 미리 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견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암시를 담은 주장이다.
김 교수는 대량살상무기가 북한의 대외 억지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한 직후에, 햇볕정책이 성공하려면 북한이 햇볕으로부터 도피할 데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로 위 문장을 썼다는 점은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된다. 그는 "햇볕정책 작동 자체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안보적 우려 사항에 대한 일정한 가시적인 성과가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방치하면 햇볕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누차 강조하면서 "안보적 우려 사항에 대한 일정한 가시적인 성과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모종의 조치부터 취한 다음에 햇볕정책을 시작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3개월 뒤인 2002년 1월 29일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미국이 악의 축에 대한 공격을 합리화하고자 꺼낸 논리가 있다. 바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다. 그해 11월 8일,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사찰을 촉구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러고 나서 4개월 뒤인 2003년 3월 17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 개시를 명령했다고 대국민 연설에서 밝혔다. 2004년에 이라크를 방문한 미국 조사단은 "대량살상무기는 없다"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조지 부시는 확인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2003년 3월에 이라크를 침공했다.
김영호 교수가 북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언급한 것은 2003년 6월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가시적 조치'를 취한 직후에 그런 주장을 공표했다. 햇볕정책이 성공하려면 대량살상무기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속에 얼마나 위험한 함의가 들어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북한이 1950년 이래로 미국의 봉쇄 속에서도 나라를 유지한 데는 군사력과 더불어 자력경생 경제정책, 북중관계 등이 영향을 끼쳤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북한이 봉쇄와 압박을 계속 견디고 있으므로 이것들부터 제거한 다음에 햇볕정책을 하든 말든 해야 한다는 게 김영호 교수의 메시지였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북한의 자립경제 기반을 흔들고 북한과 중국을 갈라놓는 시도는 햇볕정책과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시도는 전쟁을 벌이는 것과 진배없다. 김영호 교수는 이런 것들이 햇볕정책의 조건이라고 주장했지만, 절대로 조건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김영호 교수는 그런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읽히는 동시에, 그의 위험한 발상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런 시도가 북한만 위태롭게 하는 게 아니라 남한을 한층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2차 북핵위기, 햇볕정책의 원인 제공?